"아이들 국어 어휘력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모둠 별 독서, 말하기 활성화나 한자능력 키우기 같은 방안을 연구해봐야 겠어요."
"생활 속에 숨은 과학원리를 수업에 적용하는 학습법을 개발해보면 어떨까요?"
5일 오전 충북 충주시 충주대원고 교무실.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썰렁한 방에서 10여명의 교사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자신들이 최근 펴낸 16번째 논문집을 간단히 평가하고, 올해 집중 연구할 논문의 주제를 정하는 자리다. 각자 겨울방학 내내 고민한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사회를 보던 윤홍식(47) 연구부장이 마무리를 했다. "일단 의견은 다 나왔으니까 이 달 안에 같은 모둠 선생님끼리 모여 주제를 확정해서 3월부터는 본격적인 논문 준비에 들어갑시다. 17집은 더욱 알차게 꾸며봅시다."
충주대원고 교사들이 '대원 직원 연수집'이란 이름의 논문집을 처음 발간한 것은 1993년.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교사 스스로 전문성과 실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연구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논문집 발간을 제안했던 전명식(52) 교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교사들이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는데, 사립고는 인사교류가 거의 없어 인적쇄신이 어렵다 보니 변화, 개혁은 물론 미래형 교육을 꿈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선생님들이 이를 깨닫고 스스로 변화의 길을 선택한 거죠."
이 제안에 공감한 교사들은 먼저 경력과 교과 등을 고려해 50여명의 구성원을 다섯 모둠으로 나눈 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연구 결과를 교육현장에 활용하기 쉽도록 같은 과목 교사 모임인 교과협의회를 자주 갖고 새로운 학습법도 연구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전문 서적을 구하는 게 어려웠다.
밤 늦은 시간까지 토의하고 청주 등지의 도서관을 오가며 어렵사리 잡은 논문집 창간호의 주제는 '영역별 교수-학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창간호에는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적절히 대응하고 탐구력을 키우기 위한 학습법 개선 등 10편의 논문을 실었다.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막 바뀌면서 일선 고교가 큰 혼란을 겪고 있던 터라 논문은 지역 교육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대입제도 때문에 우왕좌왕하던 학교, 학부모들로부터 책자를 보내달라는 문의가 잇따랐다.
자신감을 얻은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늘었고, 학교도 논문집 발간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알찬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한창 연구 중인 교사에게는 행정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있다.
논문집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발간되고 있다. 이번 16집까지 발표된 논문은 모두 199편. 55명 교사들이 1인 당 평균 4편 가까이 쓴 셈이다. 2년 전부터는 안종환(62) 교장도 참여해 두 편의 논문을 실었고, 전 교감은 교감 연수를 하던 2005년 한 해만 빼고 매년 논문을 발표해 최다 논문제출자 기록을 갖고 있다.
논문집은 창간호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효율적인 학생지도법 등 교육현장에서 실제 부딪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16집에서 생물 영역 학습과정에서의 자신감과 문제해결력과의 상관성을 연구, 발표한 한현희(39) 교사는 "어려운 이론보다는 새로운 학습법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나 활용도 등을 체계화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며 "충주지역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많은 이유"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책을 파고 들자, 면학 분위기가 저절로 살아났다.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돼 매년 30여명을 서울 중ㆍ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고 있고, 혁신활동 우수학교 수범 사례 등으로 최근 3년 연속 충북도교육청 기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날 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시는데 학생이 어떻게 노느냐. 학교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까부는 애들도 많이 줄었다"며 웃었다.
안 교장은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라 교사들이 학위를 취득해도 공립처럼 인사고과에 아무런 혜택이 없는데도 박사 1명, 석사가 25명이나 배출될 정도로 죽어라 공부를 한다"면서 "시골 고등학교 선생님들이지만 자질과 능력 면에서 큰 도시의 어느 학교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충주=글·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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