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이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서울의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이례적인 기도회가 열렸다. 이스라엘 정부에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진보적 기독교 단체들의 모임이었다. 이 기도회에서 흥미로운 제안이 나왔다. 성지순례를 중단하는 서명운동을 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한해 3만 명이 넘어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을 제치고 가장 많다. 대부분이 성지순례객인 이들이 쓰는 돈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무기를 사들이는데도 사용될 것이므로 이스라엘이 평화정책으로 돌아설 때까지 성지순례를 중단하자는 주장이다. 친이스라엘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드문지라 이 제안은 더욱 신선해보였다.
그러나 1,300명이 넘는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이번 사태에 기독교계 주류는 대부분 침묵을 지켰다. 과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때 목소리를 높였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공격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한 한 교계 지도자급 인사의 발언이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가자 침공 기간에 벌어진 이 사례들은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를 포함, 중동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두 가지 관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국은 중동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급박한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쓸데없는 반아랍 감정과 친이스라엘 정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30년 전 다니던 미션스쿨의 채플 시간에 이런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조선도 마찬가지로 선택받은 민족이다. 조선이라는 말이 영어로 '선택받은(chosen)'이라는 뜻이므로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이스라엘 지지 발언을 한 이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한 말을 접하니 그 설교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당시는 냉전 시절이어서 한국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따랐고 친 이스라엘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새마을운동을 하던 때라 교과서에는 사막에 옥토를 가꾼 이스라엘의 집단농장 키부츠가 덴마크와 함께 모범사례로 소개돼 있었고, 선진 농업을 배우러 이스라엘로 가는 이들도 많았다. 여기에다 종교의 발상지를 존중하는 측면도 더해져,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부추겼다.
냉전이 끝난 지 20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길든 시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의 국가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사상적 원조격으로 생각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미국의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입장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만큼 이스라엘인들이 한국을 생각해줄지 의문이다. 낭만적인 짝사랑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가자 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든 이번 사태가 잠재돼있던 우리의 편견을 들추어냈다. 과거 이 땅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생지옥이 있었다. 가자 전쟁은 이민족 간의 일이지만, 해방 직후 좌우익 갈등과 6ㆍ25전쟁의 와중에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비극은 동족 간의 일이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북한을 방문해 그 실상의 한 단편을 들은 후에 쓴 <손님> 에서 황해도 사투리로 한 말이 생각난다. "이스라엘이나 조선으 하나님 겉은 건 없다오. 그냥… 하나님언 하나님이디." 손님>
남경욱 문화부 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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