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강익중(49)씨는 1994년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보았던 한 통의 팩스를 잊지 못한다. '나는 괜찮다. 강익중이 더 좋은 공간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두 줄로 이뤄진 이 팩스는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강씨와의 2인전 '멀티플 다이얼로그'를 앞두고 미술관 측에 보낸 것이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다.
6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앞두고 5일 만난 강씨는 15년 전 일을 돌이키며 "그 때 받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후 백 선생님은 뉴욕에서 마주칠 때마다 '강익중! 언제 한국에서도 같이 전시 한 번 해야지' 하셨어요. 아마 이번 전시를 미리 예언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 놓인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다다익선' 주위에 강씨의 작품 '삼라만상'을 설치한 것이다. 석탑 형태의 18m 높이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을 따라 나선형 오르막길을 오르면 200m 길이의 벽면에 강씨의 '삼라만상'이 이어진다. 1980년대 초 유학시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작업했던 가로 세로 3인치 크기의 조각그림을 비롯해 오브제, 영상, 음향, 미디어설치 등 무려 6만여 점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강씨 작품의 한글, 달항아리, 부처 그림과 새 소리, 물 소리, 다다미 소리 등이 1,003개의 비디오 모니터로 구성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에서 계속 바뀌고 있는 이미지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보름 동안 밤을 새는 작업 끝에 이날 새벽 자신의 작품 설치를 마친 강씨는 "백 선생님께서 청계산에 탑을 쌓으셨는데, 제가 감히 그 탑 주위에 담을 쌓게 됐다"면서 "그저 배운다는 마음으로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고자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15년 전에 선생님께서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어요. 아무도 생각지도 못하는 1,000년 앞을 내다보고 계셨던 거죠. 낮에도 별을 보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씨는 '다다익선'의 꼭대기가 보이는 맨 위 지점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는 아마 '다다익선'을 만들면서 미래로 날아가는 로켓을 떠올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로켓이 점화돼서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성냥을 긋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