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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바닥에 선 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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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바닥에 선 시민운동

입력
2009.02.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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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행정안전부는 불법집회나 시위를 주도, 폭력을 행사한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런 내용을 담은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는데, 행안부의 방침은 법 개정에 앞서 발표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방침은 옳다고 본다.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해치는 단체를 돈을 대주며 돕는 것은 우습고 어리석은 일이다.

시민단체의 관변단체화 기도

행안부의 지침에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선 비영리민간체들을 관변단체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올해 보조금 신청을 하라고 알리면서 행안부가 제시한 지원 유형은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사회통합과 선진화를 지향하는 신국민운동 △일자리 창출 및 4대강 살리기 국민운동 네 가지이다. 작년의 경우 △소외계층 인권신장 △문화시민사회 구축 △사회통합과 평화 △국제교류협력 등으로,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지원유형이 보다 광범위했었다.

결국 ‘비영리민간단체의 자발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건전한 민간단체로의 성장을 지원함으로써 비영리민간단체의 공익활동 증진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지원법의 목적이 많이 축소된 셈이다. 정부 보조금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 정책을 지지하게 만들거나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새로운 관변단체를 키우고 비판적 단체를 길들이려 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지원사업 유형을 바꾸면서 예년과 달리 사전에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특징이나 잘못 중 하나가 어떤 제도나 정책을 도입할 때 사전정지 작업을 하지 않고 의견 수렴을 소홀히 하는 점인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산도 많이 줄어들었다. 2000년 1월 지원법이 생기고 나서 2003년까지 매년 150억원, 지난해까지 100억원이던 지원금 규모가 올해 50억원으로 반 토막이 됐다. 16개 시ㆍ도의 민간단체 지원을 위한 자체 예산이 273억원(시ㆍ도별 평균 17억원)이 있는 점을 고려, 종전처럼 시ㆍ도에 50%를 배정하지 않고 전액 중앙행정기관 등록단체에 의한 전국단위 사업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방침 변경에 따라 비영리 민간단체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아야 하게 됐다. 행안부는 6일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는데, 대상이 되는 비영리 민간단체 833개(2008년 3월 현재) 중 450여 단체는 방침 변경에 대한 불만에서 보조금 지원사업에 불참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도 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시민단체의 고유한 문제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지원 규모가 대폭 삭감된다면 그런 제도가 없었던 시기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시민운동의 초심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3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2009년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상상력’ 특별 강연에서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이 끊길 때를 대비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하며 지속 가능성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민운동이 바닥을 친 때이며, 기득권이 사라져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개미시민운동’ 시대라는 말도 했다.

정파를 떠난 사회 변화운동을

그의 말에 의하면 시민운동이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며 바꿀 아이템은 도처에 깔려 있다. 시민운동의 영역과 계기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이명박 정부는 ‘참 좋은 정부’라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민단체들의 변신과 분발을 강조한 그는 초정파(超政派),탈정파(脫政派)를 통한 보편적 시민운동을 촉구하고, 용산 참사 때 민주당과 손 잡은 건 잘못이라는 지적도 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시민운동 경험이 풍부하고 창의력도 놀라운 박원순 씨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때 묻지 않고, 신뢰를 받는 인물은 없다. 그의 말을 새겨 들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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