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처럼 비유법을 구사하는 곳이 또 있을까. 법을 어길 수도 그렇다고 임산부의 호기심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내 경우엔 두 아이 다 성별을 알 수 없었다. 두 아이의 터울은 12년. 오랜만에 찾은 산부인과는 시설과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고 대기실에 앉은 임산부들의 임부복 패션도 화려했다.
간호사가 호명하는 임산부의 이름도 한글 이름이나 국제적으로도 통할 세련된 이름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태아 성감별은 금지되어 있었다. 먼 과거에 떨어진 시간여행자처럼 얼떨떨했다. 큰애 때는 시어머니의 꿈만 믿고 파란색 일색으로 출산준비물을 준비했다가 한 동안 남자애냐는 오해를 받았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초음파실 의자에 누워 용기를 내 물었다. “분홍색이 좋을까요, 아니면 파란색?” 모니터 불빛에 얼굴만 동그랗게 뜬 의사는 단호했다. “나중에 아는 기쁨이 크지 않을까요?” 잘못해 꾸중 들은 학생처럼 아무 말 못했다. 뱃속의 내 아이, 내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는데 마치 문밖에서 노크하는 이를 향해 묻는 듯한 느낌이었다. 후 이즈 잇? 이제 곧 28주 이상의 태아에 한해 성감별이 허용될 모양이다. 그나저나 의뭉스럽기까지 하던 산부인과에서의 비유법이 사라진다니 좀 아쉽기도 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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