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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1년/ 땀과 혼 다해… 600년 숨결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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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1년/ 땀과 혼 다해… 600년 숨결 깨어난다

입력
2009.02.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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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숭례문 화재 1년을 꼭 1주일 앞둔 3일 오전 6시10분, 캄캄한 어둠 사이로 27톤 대형 트레일러 3대가 경복궁으로 들어섰다.

밤 12시에 강원 강릉에서 출발해 밤을 뚫고 달려온 트레일러들 위에는 컨테이너박스 대신 길이 20m, 지름 70㎝의 우람한 금강송 10그루가 누워있었다. 각기 100년이 넘는 세월을 품은 나무들이다.

지난해 12월 10일 삼척 준경묘에서 벌채된 이 나무들은 강릉의 한 제재소에서 가지를 잘라내는 등 1차 작업을 거쳐 드디어 서울에 입성했다.

숭례문의 기둥과 대들보가 될 나무들이다. 소나무를 맞이한 문화재청 숭례문복구팀의 송봉규씨는 "오는 길에 별 탈이 없을까 조마조마해서 잠까지 설쳤는데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크고 곧고 좋은 소나무들을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거대한 금강송들이 하나하나 지게차로 조심스럽게 경복궁 내 부재보관소 앞에 내려지는 동안 부옇게 동이 트더니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다. 금강송에서는 진한 소나무 향이 배어나왔고, 끈적끈적한 송진이 묻어나왔다.

이 나무들은 봄이 오기 전에 껍질 제거 작업을 거친 뒤 2년 동안 부재보관소에서 단단하게 건조된다. 전국에서 숭례문 복원에 써 달라며 개인이 기증한 소나무 167그루도 이달 안에 벌채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이 나무들은 90%가 훼손된 숭례문의 2층 문루에 주로 쓰일 예정이다.

1년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숭례문은 그렇게 깨어나고 있다. 가설덧집 공사가 진행 중인 숭례문 현장은 여전히 폐허다. 발굴 조사와 지난해 발견된 지하벙커 철거작업으로 땅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건축용 철재 비계에 가려진 숭례문의 모습은 안쓰러울 만큼 처참하다. 그러나 숭례문 바깥에서는 다시 일어설 숭례문을 위한 복원 작업이 쉴새없이 이뤄지고 있다.

경복궁 내 3동의 부재보관소에서는 화재 당시 수습한 부재 3,000여점의 정리 작업이 한창이다. 화재로 검게 그을렸을지언정, 숭례문의 가치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에 문화재청은 최대한 불탄 부재를 재사용할 계획이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것들은 숭례문 전시관으로 간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부재의 정밀 실측작업은 절반 이상 진행됐고, 숭례문 지붕 위에 있던 장식기와에 대한 보존 처리도 이달 말이면 마무리된다.

새로 필요한 기와의 제작 방식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숭례문 현판을 보존 처리하고 있다. 화재 속에서도 다행히 살아남은 숭례문 현판은 한국전쟁 후 보수 과정에서 글자체 일부가 수정된 사실이 확인돼 조선시대 탁본의 모습대로 복원된다.

지난해 화재 수습에 중점을 뒀던 문화재청은 숭례문의 고증과 발굴조사, 복원을 위한 설계를 올해까지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마무리 시점은 2012년으로 잡고 있다. 250억원의 예산 전액이 국고에서 투입된다.

숭례문 복구의 방향은 단순히 화재 이전 원형으로의 복구가 아니라, 일제에 의해 왜곡된 부분까지 바로잡아 진정성을 회복하는 쪽으로 정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훼손된 육축(목재를 받치는 석재) 부분을 보수하고, 일제가 황태자 행렬을 위해 철거해버린 문루 좌우측 성벽도 복원한다. 깊은 상처를 딛고 2012년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숭례문은 더 웅장하고 당당하고 소중할 것이다.

■ 남은 과제 3

조사와 발굴, 고증, 설계의 2단계가 진행 중인 숭례문 복원 사업은 국민적 관심 속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들도 남아있다.

우선 숭례문을 받치고 있는 석축의 해체 여부다. 석축은 외견상으로는 피해가 없지만, 진화 과정에서 물이 많이 스며들었다. 새로 짓는 성벽과 기존 석축을 이을 경우 지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과, 굳이 석축을 해체해 문화재의 가치를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문화재청은 석축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4월 나오는 구조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해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발굴조사 성과물의 처리도 고민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조선 전ㆍ후기 도로면과 성벽 기초부 등이 확인됐고, 3월부터는 2차 발굴조사가 시작된다. 발굴로 드러난 유구들을 복원 계획에 반영시킬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현재까지의 발굴 유구들은 복원 가치가 없어 기록으로만 남기기로 했지만, 향후 발굴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원래의 지층으로 맞추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루 복구 작업을 이끌 도편수를 누가 맡을지도 還?타? 후보로는 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보유자인 신응수(67) 최기영(66) 전흥수(71)씨가 꼽힌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는 도편수를 결정할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 분이 함께 도편수를 맡을 수도 있고, 대목장이 아닌 분 중에도 훌륭한 기술자가 많이 있다.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화재방재 여전히 미덥지 않은…

4일 수원 화성행궁에서는 고의 방화 기도를 가상한 시범훈련이 열렸다. 숭례문 화재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훈련이다. 숭례문은 제 몸을 태워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문화재청은 목조문화재 종합방재대책을 세우고 170억원을 들여 목조문화재 143곳에 소방시설을 설치했으며, 올해 193곳에 359억원을 더 투입한다.

경복궁 등 5대 궁에는 6월까지 종합경비시스템을 구축하고,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제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목조문화재 관리에는 허점이 많다. 지난달 전국 중요 문화재 151건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소방, 전기, 가스 등에서 182건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창덕궁은 소화전이 낡아 작동이 불량했고, 김천 직지사 대웅전에는 콘센트가 문어발 식으로 설치돼 있었다. 이름만 화려한 전시용 대책이 아닌, 보다 내실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지원 기자

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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