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녀를 경찰서 앞에 버린 뒤 안부전화를 했다 검거된 20대 여성,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갓난아이를 안고 교도소로 향하는 미혼모, 5,000만원 때문에 할머니로부터 고소 당한 손녀….
대검이 2008년 한해 동안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다양한 서민 사건들을 모아 최근 발간한 '친절ㆍ서비스 우수 실천사례집'에는 이 시대 서민들의 팍팍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거남과 헤어진 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네 자녀를 키우던 유모(25ㆍ여)씨는 더 이상 연명할 방법이 없자 병원에 몰래 숨어들어 환자들이 남긴 밥을 아이들에게 먹여가며 1주일 가량을 지냈다. 하지만 병원측에 발각돼 쫓겨난 뒤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하자 유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유씨는 7, 8세의 두 아들과 '배고파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 고통스럽다. 여건이 되면 꼭 찾아갈 테니 우리 아이들을 따뜻한 곳으로 보내달라'는 편지를 경찰서 앞에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유씨는 아이들이 경찰서에 들어가는 것을 몰래 지켜본 뒤 안부를 묻기 위해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유씨 사건을 맡은 대전지검 이주영 검사는 유씨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보다 지역범죄예방협의회와 상의해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의 방을 구해주고 사건을 기소유예 했다.
백일 된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미혼모 A씨는 징역형이 선고됐다며 찾아온 서울서부지검 황정환 수사관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 돈을 썼다가 고소 당한 뒤 검찰에서 조사도 받고 친구와 합의해 사건이 끝난 줄만 알고 있었던 A씨는 당장 갓난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걱정이 됐다.
A씨는 다행히 검찰의 배려로 아이와 함께 교도소에서 지낼 수 있었고 궐석재판으로 형이 확정된 데 불복해 상소권회복 신청을 제기,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소를 나올 수 있었다.
황 수사관은 "법률지식이 없어서 조사를 받은 뒤 잘될 것이라는 주변의 말만 믿고 사건을 내팽개쳐 두는 사람이 많다"며 "생활고에 시달려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탓만 묻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경제난 속에 조손의 천륜을 갈라놓은 사건도 있었다. 지난 여름 전주지검 군산지청 김영오 검사는 하소연에 가까운 여대생 B씨의 고소장을 받았다. B씨의 할머니가 B씨를 상대로 "아들(사망ㆍB씨 아버지)이 빌려간 임대보증금 5,000만원을 갚으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이 차용증만 보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자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김 검사는 부동산 중개인들을 탐문한 끝에 할머니가 차용증을 위조한 사실을 밝혀냈다. B씨 부모가 이혼한 뒤 B씨가 어머니와 살면서 서로 멀어진 가족간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번 사례집에는 피해자나 수감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검사와 검찰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편지도 담겨 있다. 사기사건 피해자 C씨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청주지검 박무영 검사의 성실한 수사에 감사한다는 편지를 검찰총장에게 보냈다.
열심히 증거를 찾아내 대질신문을 하고 사기 피의자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던 C씨로서는 박 검사가 구세주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느껴진 것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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