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건전성 확보를 돕기 위해 조성 중인 자본확충펀드가 반쪽짜리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펀드 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 정부 지분이 있는 은행들만 자본을 수혈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3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농협, 기업은행 등 7곳이 지난달 말까지 금융감독원의 권고치인 국제결제은행(BIS) 기본자본비율 9%를 맞추지 못해 자금 수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약 2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고,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의 자본확충 규모도 각각 3,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본자본비율이 6%대에 불과한 농협이 1조원을, 기업은행도 5,000억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1차 지원대상 대부분이 정부가 주주인 '준 국책은행'인 셈이다. 이에 따라 "모든 은행에 자본을 확충해줘 기업 구조조정과 중소기업 대출을 활성화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당초 계획은 초반부터 일그러지게 됐다.
반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자체 노력으로 자본확충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올해 초 자본확충펀드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하나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필요한 자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에 나서기로 했다. 국민은행도 "현재 펀드 가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 외환은행 등 외국인이 최대 주주인 은행들도 눈치만 보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재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펀드 자금을 받을 것인지,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처한 쪽은 금융당국이다. 한국은행까지 동원해 어렵게 자금을 조성해 놓고도 막상 쓸 데가 많지 않은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1차 지원 대상 은행의 자금 수요가 5조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자본확충펀드 이용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이달 중순과 3월 결산이 이뤄지는 4~5월 등 펀드 지원 신청을 두 차례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원회 측은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고 기업 구조조정이 확대되면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선제적인 자본확충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며 "펀드를 통한 자본확충의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은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은행들을 압박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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