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강호순(38)이 '타인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냉혈한이면서도 제 자식만은 끔찍이 여기는 빗나간 부정(父情)을 보였다.
경기경찰청 박학근 수사본부장은 3일 "(강씨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책으로 출판해서 아들이 인세라도 받게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씨가 아이들의 장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책을 낼 생각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92년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각 16세, 14세)과 함께 생활해왔던 강씨는 이미 여러 차례 자식사랑을 드러냈다. 강씨는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 "자식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란 꼬리표가 붙게 될까 걱정이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고 한다. 주변인들도 "평소 아이들을 끔찍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호순이 검거 초기 자신의 행위를 과시하기 위해 범행을 털어놓고 싶은 욕심과 아이들 걱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밝혔다. 강씨가 2005년 장모 집 화재 사건을 극구 부인하는 것도 아이들을 위해 보험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진작부터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쇼"라는 의견도 있지만, 살인범들이 본능적으로 남다른 부성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해석도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전처를 살인하고 싶었지만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 포기했다"고 했을 만큼 자식에는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이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타인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독한 이기심의 소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씨가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피해자 유가족에 대해 "내가 슬퍼해야 하나"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지만, 그럴수록 자식을 자신의 분신으로 인식하는 '종족 보존 본능' 만큼은 더 강하다는 것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사이코패스가 결혼해 아이까지 두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확대된 자아로서 자식들에게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강씨의 책 출판 계획도 결국 피해자의 처지는 아랑곳 없이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자식의 생계 마련이란 자기 중심적 욕구가 결합된 것인 셈이다.
하지만 강씨의 책이 나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들의 전기나 수기 등이 출판된 사례가 적지 않지만, 국내에선 법 감정상 강씨의 책을 낼 출판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강호순이 교도소에서 책을 쓸 수는 있겠지만, 외부 반출은 교도당국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원고 반출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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