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큰 게임이잖아요. 제대로 보여줄 참입니다. 동양사상에 기초한 작품들이 최근 현대미술에 범람하고 있지만 아직 그 사상적 엑기스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요.”
사진작가 김아타(53)씨가 6~11월 열리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청돼 개인전을 한다. 지난해 7월 그의 전시를 비엔날레 사무국에 추천한 현지 재단 아르테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만약 당신의 전시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재단 문을 닫겠다”고까지 말했는데도 김씨는 줄곧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특별전은 이사회 심의를 거쳐 최근 다니엘 번바움 전시총감독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 및 국가관 운영과 별도로 20여개의 특별전을 연다. 2007년에는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특별전이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작가가 특별전에 초청받은 것은 2년 전 이우환씨에 이어 두 번째다.
베니스 비엔날레 관계자들을 사로잡은 김씨의 작품은 2007년 인도 델리에서 시작한 ‘인달라(Indalla)’ 시리즈. 인달라는 인디아와 만다라를 합성해 김씨가 만든 말이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워싱턴, 뉴욕, 도쿄, 모스크바, 프라하, 베를린, 파리, 로마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각 도시당 1만 컷의 풍경사진을 찍고 그것을 하나의 사진으로 포갰다. 한 도시를 찍는 데 길게는 한 달이 걸리고, 포토샵 작업도 하루 10시간씩 보름을 해야 완성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중노동”의 결과는 놀랍게도 아무런 형상도 없는 회색빛의 화면이었다. 1만 개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은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상징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인달라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컷에 8시간의 노출을 준 ‘도시’ 시리즈, 얼음으로 조각한 마오쩌둥의 초상과 불상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 등이 녹는 모습을 촬영한 ‘얼음의 독백’ 시리즈 등 30여점이 소개된다. 모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ON-AIR’(온에어)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렇듯 동양적 철학을 담은 그의 작품세계는 서양에서 더 각광받고 있다. 2006년 뉴욕세계사진센터에서 아시아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아트컬렉션, 휴스턴박물관 등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사들였다. 이번 전시에 맞춰 독일 유명 출판사 하체칸츠는 그의 사진집 2권을 출판한다.
김씨는 3월 아일랜드 전시와 5월 뉴욕에서 열리는 아시아 현대미술 주간 행사, 광저우비엔날레를 거쳐 베니스로 간다. 베니스는 그에게 전시 공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작업의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의 풍경을 합쳤듯, 베니스 비엔날레의 모든 출품작을 찍어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들은 사진으로만 가능한 것인 동시에, 기록하고 기억하고 재현하는 사진의 본래 목적을 뒤집는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아직 사진의 표현력은 10%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90%나 되는 영역이 남아있기에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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