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경남지사는 2일 오전 경남 진주 남강댐을 전격 방문했다. 남강댐 물을 끌어다 부산에 식수로 제공한다는 국토해양부 계획이 알려진 뒤 들끓는 민심을 달래려는 행보였다.
앞서 이 사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스스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린 김 지사는 이날 "낙동강 살리기를 선행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마디로 남의 지역 물에 눈독 들이지 말고 부산 먹는물 불안의 근원인 낙동강 수질 개선에 힘쓰라는 것이다.
같은 시각, 허남식 부산시장은 다른 사안의 기자회견 말미에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사업을 도민 여러분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얻어 쓰는 아쉬운 처지가 반영된 간곡한 호소였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끌어온 대체상수원 확보 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서는, 경남측의 거센 반발에도 공식 대응을 자제해 왔던 그동안의 태도와는 다소 다른 결연한 의지가 배어 있었다.
20년 가까이 묵은 부산시와 경남도의 '물 다툼'이 다시 불붙었다.
갈등의 도화선은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공식화한 남강댐 광역상수도사업 계획. 경남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국토부가 지난달 30일 "도와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개연성이 큰 광역권 현안인데다,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날 두 자치단체장의 분주한 행보는 향후 전개될 치열한 공방의 예고편이나 다름 없었다.
■ 맑은 물에 목마른 부산
광역상수도사업을 통한 대체 식수원 확보는 오염에 취약한 낙동강에 상수원수의 94%를 의존하고 있는 부산시의 오랜 숙원이다. 수량이나 정수능력(하루 250만톤)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페놀 오염과 같은 수질오염사고가 1999년 이후 75건이나 발생했고 갈수기에는 수질이 먹는물의 가장 낮은 단계인 3급수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 부족이 심각한 최근에는 물금취수장의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상수원 사용 한계인 5ppm에 육박한 경우가 잦아, 취수 중단에 따른 물 대란 우려까지 낳았다.
■ 왜 남강댐 인가
남강댐이 대체 식수원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91년 낙동강 페놀오염사고 대책으로 94년 남강댐과 합천댐 물 각각 50만톤을 공급하는 광역상수도사업안을 내놓았다가 경남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2년만에 유보하는 등 이미 두 번이나 실패했다.
경남 지역 댐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아 광역상수원으로 활용한 만한 곳은 남강댐과 합천댐 정도다. 합천댐은 총저수량이 남강댐의 2배가 넘지만 남강댐처럼 먹는물로 지정돼 있지 않아 상수원으로 활용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토부 계획은 남강댐의 상시 만수위를 41m에서 45m로 높여 하루 107만톤의 식수를 추가 생산해 부산(65만톤)과 마산(16만톤), 창원(10만톤), 진해(7만톤), 양산(8만톤), 함안(1만톤) 등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 "홍수피해 우려" vs "물은 공공재"
경남도는 이 계획을 강행할 경우 남강댐 인근 지역의 홍수위험 증가, 물 부족 심화 등 갖가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반발한다. 원인은 남강댐의 태생적 한계다.
69년 준공된 남강댐은 '접시형' 댐이어서 유역면적(2,285㎢)은 합천댐(925㎢)의 2.5배지만 총저수량은 39%에 불과하고, 홍수 도달시간도 짧아 집중호우시 방류기능 조절에 취약하다. 실제로 2006년 태풍 '에위니아' 때 방류량이 한계치보다 훨씬 낮았는데도 막대한 침수피해가 발생했다.
부산시는 정부의 댐 재개발사업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현재 남강댐의 1일 용수 공급가능량이 61만5,000㎥인데 2015년 기준 수요량은 46만㎥에 그쳐 사천만을 통해 버려지는 물을 끌어다 쓰면 물 부족도 우려할 바 아니라고 맞선다.
양측의 설전에는 거시적인 '명분'도 동원됐다. 경남도는 이 사업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낙동강 물관리 종합대책이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부산시는 "수자원은 특정 주민의 소유가 아니다"며 수자원 공공재론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 갈등 부추긴 국토부 일방통행
지역 여론을 무시한 국토부의 일방통행식 사업 추진은 해묵은 갈등을 한층 거칠게 부추겼다. 국토부는 지난해 5월 부산ㆍ경남권 광역상수도 사업의 재검토에 착수, 지자체간 합의나 주민설명회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지난해 12월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공식화 했다. 이후 반발이 이어지자 추진 과정과 구체적 계획에 대해 수차례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국토부는 4월 광역상수도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결과가 나오면 부산시와 경남도,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이미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해 원만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산=박상준기자 sjpark@hk.co.kr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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