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3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ㆍ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행위) 제도 도입 의사를 밝혀 제도 도입 여부가 주목된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이 필요하다면 합리적 필리버스터를 도입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이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민주당이 요구해 온 필리버스터 도입 논의에 응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장시간의 발언, 무더기 수정안 제출 등 합법적 수단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미국 상원은 필리버스터 제도를 명문화 하지는 않았지만 의원의 발언시간 제한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이를 허용하고 있다. 1957년에는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민권법을 저지하기 위해 24시간 18분 동안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남용 방지를 위해 재적의원 5분의 3(60석)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토론을 종결토록 하고 있다.
영국은 의원 발언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하원의장이 질의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해 필리버스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무더기 수정안 제출, 일본은 천천히 연단에 서는 '우보(牛步)전술' 등의 필리버스터 사례가 있다.
한국은 73년 이전까지는 장시간 연설을 통한 필리버스터가 가능했다. 실제 64년 당시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연설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유신 때인 73년 국회법을 개정해 의원의 발언시간을 제한해 필리버스터를 원천봉쇄했다. 현행 국회법은 의원의 통상적 발언시간을 15분(의사진행발언은 5분) 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동일의제에 대한 발언도 2회로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도입하려면 이 국회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논의가 진척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홍 원내대표의 제안이 조건부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정개특위를 구성해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국회폭력방지특별법을 야당이 받아들인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했다. '합리적' 이라는 조건을 단것도 껄끄럽다. 이에 대해선 의원 발언시간을 적절한 수준에서 여야가 합의로 정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당장 민주당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필리버스터 도입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국회폭력방지법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버스터 도입과 국회폭력방지법은 주고 받기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논의 진전이 쉽지 않은 이유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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