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1901~1989)은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ㆍ1861~1930)로부터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지만 가는 길은 달랐다. 양현혜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근대 한ㆍ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 (이화여대출판부 발행)에서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조망했다. 근대>
양 교수는 기독교가 민족을 정화시키는 것처럼 민족 역시 기독교를 구체화시키는 주체라고 보는 함석헌의 사상은 우치무라의 ‘두 개의 J(Jesus and Japanㆍ예수와 일본)’ 사상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그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포착해 계승했다고 분석했다.
사무라이 계급 출신인 우치무라는 일본인이라는 자긍심을 지키면서 기독교인이고자 했으며, 이는 그의 무교회주의나 러일전쟁 당시의 비전론(非戰論) 등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에 대해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같이 되면 좋지 않은가’라는 견해를 표명하는 등 국가주의적 한계가 있었다.
이에 함석헌은 무교회주의 수용, 김교신과 함께 신앙동인지 ‘성서조선’ 발행 등을 통해 우치무라 사상의 알맹이를 받아들였지만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치무라는 예언자적 사회비판에 안주했지만, 함석헌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현실의 고난을 껴안는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역사를 고난받는 기층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철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양 교수의 해석이다.
양 교수는 또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의 질서 수용, 비폭력과 관용을 통한 새로운 세상 추구라는 두 가지 역사 인식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분석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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