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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회 폭력의 악순환 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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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회 폭력의 악순환 끊으려면

입력
2009.02.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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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국회의 난장판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었다. 28일자 LA 타임스는 다시 아픈 상처를 건드린다. 의회폭력 사태를 한국인의 공격성 못지않게 '어린 민주주의'의 성장통(growing pains)을 말해준다고 분석한 논조는 신흥 민주국가의 의회 폭력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한 점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결과지상주의 정치가 본질

이 신문은 고작 20년 역사의 한국 민주주의가 군부독재 시절의 저항적 투쟁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거나, 나만 옳다며 다른 의견을 배척하고 대결로 치닫는 문화적 미숙 때문이라는 학자들의 분석과 아울러 싸움에 가담한 많은 정치인들이 '싸움에 지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다'고 정말로 믿기 때문이라는 언론의 지적을 소개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도 과거 투표하러 가는 의원을 때려 눕히거나 결투를 벌이는 폭력사례가 빈발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솔직히 약간은 위안이 된다.

그래도 영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행간에 깔린 불편한 진실이다. 경제성장으로 돈은 좀 벌었겠지만 구미에서 수백 년간 피땀 흘려 발전시킨 의회민주주의란 고도의 정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는 냉소적 시선이다.

민주주의의 미성숙, 대결주의 문화, 일부 정치인의 과장된 헌신,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핵심을 찌르지는 못한다. 정작 여의도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대다수가 그걸 왜 모르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좋은 학교 나오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 절차적 정당성, 다수결과 소수자 존중의 당위성을 왜 모르겠냐는 반박이 나올 것이다.

아무렴, 정녕 몰라서 그러진 않았으리라. 차라리 식견이 모자라 그런 거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알면서도 그런 폭력행위를 감행한 데 있다. 다수의 지배와 소수의 존중, 결과의 옳고 그름보다는 토론과 타협의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국회의원이 되면 누구나 체득하는 결과지상주의 현실론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민주주의의 어떤 격률도 결과가 나쁘면 아무 소용이 없더라는 얘기, 관건은 결국 고지를 점령하고 유권자의 표를 얻어 선거에 이기는 것인데 강단에서나 통할 민주주의의 대의를 따지는 건 호사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 무차별적 결과지상주의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괜찮고, 그로 인한 여론의 비난도 무릅쓰겠다는 도구주의 타산과 연결된다. 그리하여 '제1차 입법전쟁' 후 민주당은 지지율 상승을 자랑하며 승전보를 울렸다. 폭력 가담을 장렬한 희생적 투쟁으로 치켜세우는 분위기 속에 제2, 제3의 의회폭력의 씨앗이 자란다.

다양한 해법이 거론된다. 제목부터 수치스러운 '국회폭력방지법'제정이 추진되고 국민소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시민단체들은 폭력에 가담한 의원들의 소환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법상 징계규정 강화와 국회의원 정원 축소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용산 참사와 연쇄살인범 체포 등을 틈타 슬며시 끼리끼리 양해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분위기다. 안 될 일이다. '제2차 입법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마당에 또 다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의원 개개인 '독립 선언'을

그런 의원들을 뽑은 국민의 책임이라는 얘기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젠 의원 개개인이 정당 지도부의 구태의연한 정치 책략과 습벽의 사슬을 끊고 과감히 독립을 선언할 때이다. 스스로 자랑 삼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의회폭력의 악순환을 주도적으로 끊어야 한다.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로 난장판을 벌인 다음 의원 개인이 무슨 힘이 있냐며 정당 지도부 뒤로 몸을 숨겨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불가피했다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해서 구할 수 없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답게 당 지도부와 어떤 외부의 지시와 압력도 뿌리치고 민주주의의 대의를 지키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산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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