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7명의 부녀자를 살해했다"는 연쇄살인범 강호순(38)의 자백에 경기 서남부 지역 주민들은 깊은 충격 속에 떨고 있다. 잔혹스러웠던 강의 범행 무대가 자신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 정도의 강의 범행 사실이 하나씩 확인되면서 주민들은 "무섭고 불안해서 못살겠다"고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이웃에 살인마를 두고 살 수는 없다"며 획기적인 치안력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 곳곳이 치안 사각지대
1일 오후 강이 극악스런 범죄를 저질렀던 수원시 당수동 축사 일대 도로. 휴일인데도 차량 통행은 뜸했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축사 앞에서 농로를 따라 3㎞ 남짓 달리다보니 수인산업도로로 불리는 42번 국도가 나왔다.
우측은 수원, 좌측으로 빠지면 인천 방향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비봉인터체인지(IC)에서 화성으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도 지척이다.
강의 범행 장소에서 수인산업도로까지 나오는데는 승용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직선거리로 1.5㎞ 거리다. 인천 쪽으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군포IC로 빠지는 진입로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직진하면 서해안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매송IC와 만난다. 군포 과천 의왕으로 가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강의 '범행 아지트'를 중심으로 경기 서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길들은 이처럼 널려 있었지만, 도로 주변에 패쇄회로(CC) TV를 찾기란 어려웠다. 치안사각지대가 따로 없었다.
42번 국도와 39번 국도 주변에 설치된 CCTV는 5대가 전부였다. 특히 호매실IC, 비봉IC, 매송IC 등 고속도로 나들목 주변은 방범용 CCTV가 단 한 개도 없었다. 낙제점 수준인 치안이 살인마를 활개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공포에 떠는 주민들
서남부 지역 주민들은 연일 공포에 떨고 있다. 강이 부녀자들을 살해해 암매장한 곳이 대부분 이 지역에 몰려 있는 데다, 2007년 안양 초등생 2명, 2004년 부녀자 정모(당시 44)씨를 각각 살해한 정성현(41)도 이들 지역에 시신을 암매장을 했던 '악몽'을 고스란히 간직한 탓이다.
강의 범죄행각이 드러난 이후 수인산업도로 주변 음식점은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음식점 주인들은 "장사고 뭐고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수원시 입북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홍모(52.여)씨는 "집 앞의 도로를 통해 살인범이 시신을 옮겼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주민 최모(38)씨는 "서울에는 밤이면 경찰순찰차도 많이 돌아 다니지만 이쪽은 순차차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다"며 "순찰이 힘들다면 CCTV라도 많이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번째 희생자인 박모(36)씨가 일했던 수원시 화서역 인근의 노래방은 개점 휴업상태다. 역 주변의 10여 개 노래방도 사정은 비슷했다. M노래방 주인 이모(41)씨는 "연쇄 살인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도우미들이 출근을 꺼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마지막 희생자인 여대상 A양이 살던 군포 지역은 흉흉했다.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인근 수리산에 가기로 했던 유모(41)씨는 "아내가 무섭다고 해 등산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군포고 2년 장모(17)양은 "친구들끼리 집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 "치안 강화 대책 서둘러야" 한목소리
경기 서남부 지역 주민들은 연쇄살인처럼 흉악범죄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치안력 부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2007년말 현재 경기 지역의 총 범죄 건수는 서울보다 5% 포인트 정도 많은 37만4,000여건에 달하지만, 경찰 1명이 맡고 있는 인구수는 705명으로 서울의 511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
전국 평균(507명)의 1.4배나 된다. 경기 지역 인구는 계속 늘고 있는 반면 경찰병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강호순이 저질렀던 범행의 주무대인 화성의 경우 매년 7%대의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지만 치안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구 증가가 두드러진 경기 서남부 지역은 긴급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경찰관을 당장 더 배치하고, 이번 사건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된 CCTV 등 방범시설 설치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범구 기자
송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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