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리라
바람도 찾지 못하는 그곳으로
안개비처럼 그대가 오리라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모래알들은 밀알로 변하리라
그러면 그 밀알로, 나 그대를 위해 빵을 구우리
그대 손길 닿는 곳엔
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
메마른 날개의 새는 선인장의 푸른 피를 몰고 와
그대 앞에 달콤한 비그늘을 드리우리
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
다만 별빛에 배부르리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뿐
어느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지금은 아주 유명한 영화감독인 유하 시인의 이 시 가운데 가장 마음을 찌르는 말은 ‘가난한 나’라는 말이다. 그런 ‘내’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세상은, 사막이 옥토로 변하는, 독충이 익충으로 변하는, 식육동물이 아름다움의 찬미자로 변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세상은 당신이 가능하게 만든다. 당신은 나의 사막을 찾아오는 안개비이고 빗방울이기 때문에. 사막의 빗방울! 사막을 건너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내가 서울에 살 때 동인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유하 시인은 아무리 초라한 자리도 순식간에 화려하게, 아무리 우울한 자리도 정말 순식간에 즐거운 자리로 변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을 즐겁게 해주면서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랑이 마음에 깃든 자들은 모두 평화주의자들이다. 사랑의 순간이 우리 모두를 평화주의자로, 아름다움 앞에 고개를 숙이는 자로, 변하게 하는 기이함을 되새기며 이 시를 읽는다. 가난한 당신이여, 당신의 연인에게 오늘 이 시를 읽어주기를.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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