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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낮은 곳은 보지 않는 법치

입력
2009.02.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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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출범 직후 '고소영ㆍ강부자 내각'에 실망한 국민들은 촛불 집회를 겪으며 낙담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속에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위기 관리 능력의 부재까지 드러낸 정권을 보며 지지표를 던진 이들마저 등을 돌렸다.

하지만 "반미, 반정부 세력이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한나라당 논평이 보여주듯 정권 내에서는 먹을 거리 불안감에 촛불을 든 국민마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후 법치주의를 통한 법질서 확립이라는 정권의 입장은 더 강경해졌고, 국민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법대로'인식 속의 국민 외면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2009년의 첫 달이 가기도 전에 이번엔 용산에서 촛불 집회가 시작됐다. 2월 1일에는 경찰의 불법 규정에도 불구, 4개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촛불을 들었다. 정권은 '법대로 법치'를 외치지만 국민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왜 현 정권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할까. 원인은 현 정권이 법치의 방점(傍點)을 잘못 찍은 데 있다. 용산 참사가 그런 경우다.

철거민들의 건물 옥상 점거는 애초 경찰에 저항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재개발조합 측에 좀더 성의 있는 보상을 요구하다 철거 용역업체의 폭력과 맞닥뜨리자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고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의 합류가 문제로 부각됐지만 참사 이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곳은 전철연 뿐이었다. 재개발조합 등은 철거 용역업체를 동원해 철거민들을 내쫓으려 하고, 구청 등 관련 당국은 민간사업자가 해결할 일이라며 외면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였을까.

법치는 바로 그 시점에 이뤄졌어야 했다. 도심 재개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철거민들이 현실적 수준의 보상을 받고 있는지, 조합이나 시행사가 제대로 보상하는지, 철거민 이주 대책은 적절한지, 철거 용역업체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을 점검해야 했다.

전철연이 철거민 손에 시너와 화염병을 쥐어주기 전에 정부나 관련 당국이 철거민들과 진지하게 소통해서 해결책을 찾았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철거민들의 농성을 터무니 없는 수준의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허구헌 날 도심 재개발 지역에서 일으키는 불법 행위로 일축해 버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법치를 원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철거민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에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법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호소를 듣고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는 법치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신속한 진압만 법치라고 생각했다. 힘없고 소외된 이들이 겨울 칼바람 속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이유와 과정은 중요치 않았다. 참사 후 사과 한 마디 없는 것도 그런 인식의 산물일 것이다.

'법대로'만 외치는 게 법치는 아니다. 법에 따라 주어진 공권력을 국민들을 향해 앞뒤 안 가리고 휘두르는 게 법치라고 할 수는 없다. 법치는 단순히 법으로 국민을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치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법에 의해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의 문제가 끼어들 틈은 없다.

법이 능사가 아니게 하는 것

국민들에게 이념의 색깔을 덧씌워 촛불 든 시민들을 '반미ㆍ반정부 세력'의 동조 세력쯤으로 규정하고,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바라보는 시각이 현 정권 내부에 존재하는 한 법치는 구현되지 않는다. 법이 가진 자, 힘있는 자들의 편이라는 사실을 체험한 이들에게 '법대로 법치'만 내세우는 것은 법 집행 권한을 쥔 권력자들의 아전인수다.

진정한 법치는, 법치 이전에 이 사회의 낮은 곳, 소외된 곳에 있는 이들이 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법과 법을 집행하는 권력이 만인 앞에 평등하게 작용한다는 믿음을 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법이 능사가 아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법치 아닐까.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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