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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55> 김부남사건으로 온사회가 떠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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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55> 김부남사건으로 온사회가 떠들썩…

입력
200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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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신문을 보던 나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내 차는 벌써 중부 고속도로를 지나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2시간 여 만에 전주에 도착한 것이다. 재판이 벌어질 건물은 일제 때 지은 건물인 듯 낡아보였다. 청사 주변은 이른 시간임에도 2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 눈에 뜨였다. 마치 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1991년 8월 26일.‘김부남 사건’의 1심 선고 날이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한 여성이 21년 전에 성폭행한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여성은 9살 때 이웃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결혼 후 아이까지 낳고 살았지만 결국 21년이 지나 가해자를 살해하고 말았다.

그 해 초, 나는 신문 지방뉴스 한 귀퉁이에 실린 이 작은 기사를 본 후 계속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과연 이 여성이 성폭행당한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면 왜 21년이나 지난 후에 보복했단 말인가. 둘째, 수없이 일어나는 살인사건 중에 전국 언론은 왜 유독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한 해가 다 가도록 들끓고 있는 것일까. 잠시 후 호송버스가 경찰차를 앞세우고 청사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급히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법정 안은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우성을 질러댔다. 얼마 후 긴 복도에 푸른 수의를 입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포승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들어섰다. 사람들이 숨소리도 죽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법정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1심 공판 마지막 날, 그녀는 최후의 진술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재판관 세 명이 자리를 잡자 그녀가 일어났다. 재판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내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선고문이 낭독됐다. “김부남.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 치료감호에 처한다.” 순간, 나는 ‘아니야, 이건 또 다른 살인이야.’ 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 눈에 세상은 ‘9살의 어린아이’를 법정에 세우고 있었다.

재판정을 뛰어나온 나는 ‘우리가 범죄하고 있는 사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후원자들을 만났다. 법률제정을 위해 뛰는 사람들을 만났다. 항소가 기각되고 상고가 기각되며 마침내 1993년 5월 1일, 그녀가 출소하였다. 나는 그녀를 만났다.

수의를 입지 않은 그녀는 순진한 소녀 같았다. 그녀는 처음에도 그랬듯이 나를 만나면 아무 말이 없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녀가 나를 만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의 주치의가 그녀를 만나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녀가 나를 만나는 날이 다가오면 사건을 일으키던 때처럼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해져 사고를 낸다고 하였다. 나는 의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추적하고 있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접근도 그녀를 죽이는 다른 패턴일지도 몰랐다. 불행한 그녀를 위해 자선을 베푼다며 자신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는 무리 중에 하나가 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치료감호로 석방되자 그녀를 구해 준 변호인단과 후원자들은 유명세를 타고 값이 하늘 같이 치솟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이름은 더욱 더 알려졌다.

그녀는 이름이 알려질수록 두려웠다. 이름을 바꾸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법은 허락하지 않았다. 성형을 하려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남편도 그녀를 버렸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나는 그녀를 위해 준비하던 영화계획을 접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린이 성폭행사건 실화 시나리오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조디 포스터’와 ‘리암 니슨’이 주연하는 <넬> 이라는 미국 영화였다. 시나리오는 나를 매혹시켰다. 한 어린 소녀(조디 포스터)가 자기도 모르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산속에 버려져 살다가 우연하게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마저 몰랐다. 짐승처럼 울부짖기만 하였다. 그녀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산 속으로 도망쳤다. 그녀를 발견한 사람들(정신과의사-리암 니슨, 심리학자-나타샤 리차드슨)은 그녀에게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세상도 자연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세상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나는 ‘김부남 사건’을 영화로 만들지 못 한 아쉬움에서 <넬> 영화 판권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촬영팀에 합류 하였다. 촬영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깊은 산속에서 진행되었다. 작은 호숫가에 ‘넬’이 사는 작은 집을 지었다.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영국감독 ‘마이클 압티드’였다. 그는 주인공 ‘넬’과 같이 매우 정숙한 성품이었다.‘넬’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는 연기를 위한 감독과의 대화 외에는 촬영하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로 넬의 치료를 맡는 역인 ‘리암 니슨’은 연기를 위하여 스탭들과 지내는 시간에도 극중 인물처럼 매우 친절하고 온순하게 생활을 하였다. 두 세계적인 배우는 어린이 성폭행문제를 다룬 영화가 사회에 필요하다는 뜻으로 1,000만달러 이상의 개런티 대신 무보수에 가까운 출연료로 임하고 있었다. 리암 니슨은 내게 어깨동무하며 ‘당신의 나라에서도 곧 이런 영화를 만들 때가 올 겁니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귀국한 나는 김부남의 근황을 확인하고 싶었다. 겨우 주치의의 동의를 얻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예나 다름없이 아무 말이 없었는데 내가 아들 안부를 묻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영민이 잘 있어요. 어저께 축구했는데 영민이가 골을 넣었어요. 정말 멋진 골이었어요.” 나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헤어질 때 그녀가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다음엔 영민이 하고 같이 올게요.” 나는 서울로 올라오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바뀌며 다시 그녀를 생각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이 내 직업인가보다.

김부남과 아들 영민에게 <세상이 아름답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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