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짐작하고 예상했던 일이라 해도 누가 어떻게 말하고 통계가 뭘 뒷받침하느냐에 따라 무게와 파장, 느낌이 달라진다.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성장률, 산업활동 및 수출입동향 뉴스는 국민들이 과연 고통의 긴 터널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을 던져줬다. 첫째는 "(전기대비 –5.6%, 전년 동기대비 –3.4% 성장한) 작년 4분기를 경기침체의 시작으로 본다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말이다. 지금은 월 단위도 넘어 주 단위로 경제전망이 바뀌는 경기 수축기라며 회복시점은 아예 공란으로 남겼다.
김석기씨에 밀린 경제팀 청문회
통계청이 추계한 지난해 12월 광공업생산은 내수와 수출의 동반부진을 반영, 1년 전보다 18.6% 감소했다. 11월(–14.0%)보다 크고 1970년 1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악이다. 같은 기간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62.5%에 머물렀다. 멈춰서는 공장이 80년 9월 이후 가장 많단다. 1월에 33%나 격감한 수출을 포함한 소비재판매 설비투자 기계수주 등 부수지표의 악화는 거론조차 겁날 만큼 급전직하다. 그 영향이 2~3개월 뒤 고용시장에 옮겨간다고 보면 미국과 유럽에서 하루 만에 7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런 사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주 방송사 주관의 원탁대화와 장ㆍ차관 워크숍에서 드러난 상황 진단은 책잡을 게 없다. 연초부터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인하 등 거시수단부터 일자리 만들기ㆍ나누기 등의 미시수단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고 선제적인 정책처방을 펴고 있다며 한국이 가장 먼저 회복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 것도 크게 나무랄 것 없다.
야당은 '변명 위주의 일방적 홍보'라고 비판하지만 공동체의 위기극복 유전자를 일깨우고 희망을 갖자는 호소 자체를 시비할 것은 아니다. 내년에도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으면 국민의 인내가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정정불안에 휩싸인 그리스나 아이슬란드 등을 볼 때 잘 짚은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진단과 처방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 대통령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가장 기본적 코드는 화합과 소통"이라고 충분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적 공감과 동참이 있어야 정책의 약효가 발휘된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리더십의 행태는 딴판이다. 국정의 초점을 흐리고 번번이 조건을 앞세운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은 단적인 예다.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가리기도 전에 여론에 떠밀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법질서의 원칙에 어긋나고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의 이해와 충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 내정자는 사법적 판단 이전에 이미 정치적ㆍ도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그 사이에 보름 전 내정된 새 경제사령탑 인준청문회는 뒷전에 밀렸다. "우리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서 위기극복 속도전을 강조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정부의 탕평인사와 화합ㆍ소통 노력을 거론한 질문에 대해 "미국 정치를 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국 수준에 갔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이 정도면 거의 '막말' 수준이다.
국정을 관리하는 정권의 편협함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3년 임기의 절반을 남겨놓고 사임한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의 이임사는 정권이 지향하는 선진 일류국가의 정체를 의심하게 한다. "연구원을 씽크 탱크(두뇌)가 아닌 마우스 탱크(입) 정도로 여기며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정신"을 비판한 그에게 여당 중진은 되레 "외압사례를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적반하장이다.
이동걸씨 사퇴는 이중잣대 전형
이것이 이 정권의 상징적 지적 수준이다. 필요하면 속도전도 언제든 지구전으로 바뀔 수 있고 두뇌집단도 정책 개발보다 정책 홍보를 앞세워야 된다. 생산적 정책논쟁과 유효한 정책 추진에 전념해도 부족한 정부가 매번 이중잣대로 불화와 갈등을 조장하며 두려움을 더욱 키우니 참으로 난해한 수수께끼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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