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기관이 주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돈맥경화'를 풀려고 했던 당초 취지는 무색해지고,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을 받은 정상 기업까지 자금줄이 말라 고사 직전에 이르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구조조정 명단이 기업과 은행이 "모두 살기 위한 상생부(相生簿)"라는 던 정부의 말과 달리 시장에서는 '결국 살생부(殺生簿)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애매한 정책도 시장에 혼선만 초래하며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표류할 조짐이어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 B등급 기업까지 신규자금줄 봉쇄당해
금융권에 따르면 워크아웃 대상 기업인 C등급 기업은 물론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자금을 지원키로 한 B등급 기업에게도 신규자금 지원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의 기업여신담당 부행장은 "현재 B등급 기업의 경우 신규자금을 신청해 올 경우 채권은행단이 협의해 재평가를 실시해 자금을 집행하기로 돼 있다"며 "B등급 기업이라도 추가 지원을 할 경우 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커 신규지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까지 B등급 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을 결정한 은행은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B등급과 C등급이 다를게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B등급 판정을 받은 L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C등급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 3개월간 채무유예를 받는 것이나 B등급 기업이 대주단 협약에 따라 1년간 채무유예를 받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며 "신규자금을 받으려면 자구계획을 포함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라는데 사실상 워크아웃이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B등급업체가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측에선 C등급으로 내리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때문에 일부 B등급 건설사의 경우 아예 유동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권보다 사채시장를 찾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이들 기업들의 잠재 부실은 더욱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 사각지대에 놓인 협력업체들
워크아웃 대상 기업과 거래하던 협력사들에 대한 지원도 현재까지 '구두(口頭) 약속'에 그치고 있다. 당초 채권단과 금감위는 C등급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더라도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신속지원 프로그램(패스트트랙)을 우선적용해 금융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었다. C등급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협력업체들의 어음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면서 은행문턱 조차 못 넘고 있다.
일부 시중 은행들의 경우 1차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부분 지원을 하고 있지만 2,3차 업체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원을 하더라도 추가 담보나 신용보증기관의 추가 보증을 요구해 협력업체들이 자금을 지원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B등급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들도 어음 할인을 제때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 해결사가 없는 구조조정
구조조정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조정의 해결사가 없다는 것이다.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가 있지만, 현재로선 그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채권단간 이견을 강제조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최대 현안이었던 조선사 선수금환급보증(RG)을 둘러싼 논쟁은 채권단 이견조율부재의 대표적 사례다. C&중공업은 RG와 관련한 은행과 보험사의 이견 끝에 워크아웃 대상에서 퇴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해외매각이 추진되는 등 혼선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채권단의 자율적 해결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원칙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배근민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구조조정은 실물경제에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데 현재 구조조정은 너무 느려 자금 순환에 도움이 안되고 있다"며 "정부가 직접 은행에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고 정상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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