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개그맨 박휘순하고 헷갈려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영화 보기에 인색한 사람일 것이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 한국영화를 애써 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배우 박희순. 2002년 '보스상륙작전'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가족' '남극일기' '귀여워' '러브토크' 등에 잇달아 얼굴을 비쳤지만 2007년 개봉한 '세븐데이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중성과 지명도를 얻었다.
느물거리는 비리 형사이면서도 일순간 의협심을 발휘하는 입체적 인물 김성열 역을 박희순은 맞춤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영화대상과 청룡영화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의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잇따라 호명되면서 충무로의 주요 배우로 자리잡았다.
박희순이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영화 '작전'은 그에게 또 다른 도약대가 될 듯하다. 조폭 출신 금융사업가로, 대한민국 1%를 지향하며, 돈이라면 지옥을 간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황종구 역을 맡은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스크린을 유영한다.
손가락을 '딱' 튕기며 "오케이, 거기까지"를 연발하는 그의 모습은 금세 관객을 주식 작전의 세계로 흡인한다. 마치 오래도록 연모하던 역할을 이제야 제대로 만난 것처럼.
그러나 그는 "'작전'의 시나리오가 생소한 소재인 주식을 다루고 사회성도 있어 마음에 들었지만 출연은 망설여졌다"고 했다. "일단 건달인데다, 행동의 수위가 너무 세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워낙 많아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 듯했고 더군다나 내가 조폭 역을 많이 하다 보니 거리감을 좀 느꼈다." 결국 그는 석 달을 장고한 끝에 "지적이고 세련되고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폭력적인 인물을 만들어보자"며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선택된 황종구는 박희순을 만나 1차원적 캐릭터에서 3차원적 주요 인물로 거듭났다. 시나리오 원안에선 단순한 조폭 출신으로 묘사됐던 황종구는 박희순의 건의로 인간관계가 넓은 야심가로 변모했다.
"황종구가 왜 작전에 끼는지 타당성이 없어보였다. 건달 시절부터 정계, 재계 등에 발을 넓혀서 작전세력을 결집하는 인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감독님이 이를 받아들였다."
어두운 과거와 숨겨진 폭력성을 복합적으로 담아낸 황종구의 올백 머리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언젠가 멋진 악역을 하게 되면 사용하자고 아껴놓은 헤어스타일"이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적이면서도 교활한 면모를 강화시키는 안경 착용도 그의 제의로 이뤄졌다.
상복도 지지리 없었고 대중성도 뒤늦게 얻었지만 사실 그는 대학로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곧잘 꼽혀왔다. 1990년 대학로의 명문 극단 '목화'에 입단해 손병호, 정은표, 성지루, 임원희, 유해진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10년 넘게 연기실력을 다졌다.
다년간 내공을 쌓아온 배우라 그런지 그는 지난해 터진 상복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배우 시작하고 작은 상도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연기 못한다는 소리 들어본 적은 없는데도 상을 못 받으니 솔직히 창피했다. 상을 받으면 어깨가 무겁다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오랜 짐을 던 것처럼 홀가분하다."
그는 "주연을 맡으니 편집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다. "조연은 한두 개 장면만 편집과정에서 빠져도 타격이 크지만 주연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세븐데이즈' 출연 이전엔 항상 편집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오죽했으면 제가 '세븐데이즈'에서 편집기사님 덕을 봤다는 말을 하고 다녔겠나."
박희순은 강혜정과 호흡을 맞춘 멜로 '우리 집에 왜 왔니'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이 달 또 다른 출연작 '1,000,000,000'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박희순에게는 둘 다 편집 걱정 안해도 되는 작품들이다.
■ 리뷰/ 영화 '작전' 조폭·펀드매니저·사주 등 결탁 600억대 주식작전
선배의 꼬임에 빠져 주식 지옥을 경험했던 강현수(박용하)는 심기일전, 작전 주식만 골라내 고수익을 올리는 '꾼'이 된다. 어느날 그 때문에 피해를 본 작전세력과 맞닥뜨리면서 현수의 일상은 갑자기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조폭 출신의 금융사업가 황종구(박희순)가 투자관리사 유서연(김민정)과 펀드매니저, 시황분석가, 건설업체 사주 등과 꾸민 600억원대의 주식 작전에 강제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
시나리오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낯선 전문적 용어가 줄을 잇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구축된 캐릭터들의 흡인력이 남다르다.
'통정거래' 등 어려운 주식 용어를 술에 비유해 풀이하는 재치가 눈길을 붙들고, 일봉 주봉 월봉 등 주식 그래프 관련 용어를 '응?돌림 삼형제'로 착각하는 식의 일자무식 조폭 유머가 톡톡히 양념 구실을 한다. 주식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어도 큰 불편 없이 서스펜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박용하, 박희순, 김민정의 삼각 연기대결도 기대 이상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CF를 연상시키는 말끔한 화면도 인상적. 하지만 크게 터지는 한 방이 없어 밋밋해진 절정이 아쉽다. 이호재 감독의 데뷔작. 12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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