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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이코노미에게 물어 봅시다] '세계 1등' 조선산업을 왜 구조조정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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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이코노미에게 물어 봅시다] '세계 1등' 조선산업을 왜 구조조정 하는 거죠?

입력
2009.02.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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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은 최근 수년 동안 우리를 으쓱하게 만든 대표적인 효자 산업이었습니다. 세계 상위 6대 조선사가 모두 한국 업체들이고, 세계에서 배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도 우리나라 입니다.

그래서 생긴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은 한국’이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선업계에 대한 구조조정이 한창이라는 소식이 우리를 의아하게 만듭니다. 1등 산업에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긴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조선산업은 반도체, LCD, 휴대폰, 철강 등과 함께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산업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광고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1970년대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배짱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정 회장이 허허벌판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오백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영국의 바클레이즈은행에서 조선소 건립자금에 대한 차관을 약속 받은 뒤,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로부터 26만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한 뒤 계약금으로 14억원을 받으면서 시작됐으니까요.

이후 삼성, 대우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속속 조선산업에 진출했고, 이들 기업 간의 경쟁으로 기술과 품질이 크게 발전하는 선순환이 이뤄져 세계적인 조선 기업들이 탄생하게 됐답니다.

우리 조선산업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가요?

우선 글로벌 경쟁력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수출 현황을 보죠.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선박 수출 규모(유엔 통계 기준)는 266억 달러로 세계 선박수출 시장의 25.6%를 차지합니다. 물론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수출시장 점유율에서도 2위인 일본을 11%포인트, 3위인 중국을 14%포인트나 앞서는 압도적인 1위죠. 특히 최대 경쟁국이던 일본을 2001년 처음 추월한 이후, 최근 들어 그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압도적입니다. 그 동안 우리 조선산업은 우량한 대기업 위주로 발전해 왔습니다. 조선산업에 대한 글로벌 통계를 발표하고 있는 클락슨(Clarksons)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현대중공업(1위), 삼성중공업(2위), 대우조선해양(3위), 현대미포조선(4위), STX조선(5위), 현대삼호중공업(6위) 등 우리나라의 6대 조선기업이 전세계를 통틀어 1위부터 6위까지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최근 들어 어려워진 조선업계 사정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수년간의 일감(수주잔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군요.

이런 위상은 통계에서도 확인됩니다. 우리나라의 선박수출은 2001년 이후 8년간 연평균 무려 22.7%씩 늘어나 2008년에는 432억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10.2%)이 10분의 1을 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우리나라 선박수출이 장기간 큰 폭으로 증가했을까요.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개발도상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물품 운송량이 급속히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실어 나르려면 배가 많이 필요했던 거죠. 여기에다 국내 우량 조선사 간의 경쟁이 기술, 품질 등의 경쟁력 강화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조선업계 구조조정 얘기는 왜 나오는 거죠?

이런 세계경기의 장기 호황에 따른 물동량 증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조선업계에 거품을 끼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수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발주처의 선박발주가 크게 증가했고, 공급 측면에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조선업 허가를 많이 내 주면서 능력이 충분치 않은 기업들이 지방에 대거 진출하게 됐습니다.

실제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나 중국 등에서는 선박 건조 경험이 없는 조선사들이 국제시장에서 수주를 하고, 이런 선박 수주 계약서를 근거로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 받아 조선소를 건립하는 붐이 일었습니다. 선박을 건조해 본 경험이 없는 조선업체들이 수주를 하는 기이한 현상은 1970년대 이후 두 번째라고 합니다.

이렇게 국내외 조선업계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된 거품(버블)은 2007년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되면서 일시에 터지게 됐습니다. 경제침체로 기존 수주 계약이 취소되면서 신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후발 중소’ 조선사(해외 수주 실적이 있는 대기업으로, 기존의 ‘우량한 선도’ 조선사와의 구분을 위해 후발 중소라 지칭)의 경영이 빠르게 악화됐답니다.

최근에는 개별 조선업체들의 정확한 재무상태를 알지 못하는 은행들이 중소 조선사들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을 꺼리면서 조선산업 전체의 신諛譯痔?심화됐고 그래서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업계 전체가 구조조정 대상인가요?

최근 신문지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퇴출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우량 조선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전체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흔히 일반인들이 ‘구조조정’이나 ‘퇴출’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가장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정책당국자가 강제적으로 특정 기업의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인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 주체중 하나인 은행 등 채권자가 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기업들에 대해 신규 대출을 중지하거나 기존 대출을 회수해 자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일 뿐입니다.

다만, 조선산업의 특성상 중소 조선사라 하더라도 대부분 대기업인 데다 최근 건설, 자동차 등 여타 산업과 함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실제보다 다소 증폭된 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조선산업의 전망은 어떤가요?

글로벌 경기침체로 세계 해상 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함에 따라 향후 수년간 후발 중소 조선사의 어려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조선업계에 대한 안 좋은 뉴스도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이구요.

하지만 전체 조선산업으로 따지면 후발 중소 조선사의 생산비중이 낮아 조선업 전반의 업황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우리 조선산업의 경쟁력으로 볼 때 다른 나라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오히려 국내 중소 조선사와 중국 조선사들의 무리한 저가 수주 경쟁이 줄어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더욱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환율까지 우호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요. 이는 향후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 수주경쟁에서 일본이나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대비 가격경쟁력 우위를 더욱 확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이런 기술ㆍ가격 경쟁력에 만족해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되며, 향후에도 현재 확보된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우량 선도 조선사들은 선박의 고부가가치화 및 다양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비하여 해외 생산기지 확보, 원천기술 개발 등 생산원가 절감 방안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추진중인 중소형 조선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속할 필요가 있으며 이후에도 전문분야에 특화해 작지만 강한 기업이 되도록 유도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강기우 조사역

● 구조조정 칼자루 쥔 금융사

조선업체들의 구조조정에 은행 같은 금융회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다른 상품에 비해 배 한 척을 만드는 데 드는 자금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배를 주문하는 쪽이나 만드는 쪽 모두 자체 자금보다는 금융권에서 빌려 쓰는 돈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사들이 어려워지면 금융사들도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 셈이죠.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세계 1위라는 우리 조선사들이 배를 만들어 팔아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사상 최고 호황이었다는 2007년 조선업계의 영업이익률은 대략 5~10% 사이였습니다. 1억달러 하는 배를 만들어 팔아 500만~1,000만달러 정도를 손에 쥔 셈입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돈을 번 쪽은 배를 주문한 선주들에게 구입비용을 대출해 준 금융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보통 10~12년 만기로 연 6% 이자에 돈을 빌려주는데 1억달러를 빌려주면 단순 계산으로도 건당 3,000만달러 이상은 족히 남기게 됩니다.

이를 흔히 선박금융이라 부르는데요, 세계적으로 연간 80조원대의 선박금융 시장에서 1~5위는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등 서구 금융사들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금융사들은 경험부족으로 아직 이 분야에 적극 진출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퇴출이나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된 조선업체들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 칼자루를 쥔 은행과 보험사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사들이 각자의 채권규모에 맞춰 지원금을 내야 할 판인데, 서로 '내 채권 규모가 더 적다'고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수금지급보증(RG) 보험이라는 조선업계의 특수한 채권 때문입니다. RG는 선주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거액의 선수금을 조선사에 지급하는 대신 조선사에게 계약 이행을 약속 받고, 문제가 생겼?경우 선수금을 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한 안전장치입니다. 은행은 조선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뒤 RG를 발급하고, 조선사는 다시 이를 선주사에 제공하는 것이죠.

이 때 은행은 RG 발급에 따른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대개 보험사에 보험료를 내고 RG보험에 가입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바로 이 보험사들이 인수한 RG를 두고 은행들은 'RG도 대출채권이다', 보험사들은 '아니다' 하며 서로 의견을 달리 하고 있어 결정이 늦어지고 있답니다. RG가 대출채권으로 인정될 경우 보험사들이 내야할 지원금이 대폭 늘어나게 되는 데, RG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조선업계의 구조조정도 큰 영향을 받게 될 전망입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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