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陶山書院), 하회마을, 임청각(臨淸閣)이 역사를 증거하는 경북 안동. 유원지마냥 관광버스들이 드나들고 시장판 같이 시끄러울 때는 가고 싶지 않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의 모래사장을 시끄러운 사륜 오토바이가 휘젓고 다니고, 탈춤판으로 하회마을이 욕을 보는 모습은 결코 보고 싶지 않다.
선조의 현창(顯彰)보다 영국 여왕의 방문을 떠벌리는 추한 모습은 창피스럽다. 안동이든 하회든 이곳을 방문할 때는 진지하고 숙연해야 한다. 이 시간만은 역사를 되새기고 위대한 선조들의 삶과 현재 우리의 존재를 음미하는 자리여야 한다.
위대한 선조들의 헌신적 삶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조선을 초토화하며 19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일거에 전국을 삼킨 임진왜란 6년 7개월 동안 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를 맡아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서 건져낸 분이다. 선조가 평양, 의주로 도망가 조선을 버리고 명나라에 붙어살기로 작정할 때, 압록강을 건너면 조선을 버리는 것이니 죽어도 이 땅에서 싸우다가 죽어야 한다고 목숨 걸고 막은 분이 유성룡이다. 이순신을 발탁한 이도 유성룡이다.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유성룡이 싸워 건져낸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서애 선생이 젊은 시절 공부하던 곳이 병산서원이고, <징비록(懲毖錄)> 을 지은 곳이 옥연정사(玉淵精舍)이며, 서거하신 초가가 있던 곳이 충효당(忠孝堂) 자리다. 징비록(懲毖錄)>
조선의 힘으로는 항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명나라 지원군이 왔다. 전란으로 조선 백성들이 죽어 나갔지만 명과 왜군은 어느 한 쪽의 완승이 어렵자 결국 조선을 나누어 가지기로 4년간 비밀협상을 진행했다. 조정이 이 분단 획책을 알지 못하고 허둥댈 때, 그 음모를 정확히 꿰뚫고 저지한 분도 유성룡이다.
1910년 일본은 한일병합으로 조선을 강점하였다. 힘없는 백성은 망한 나라에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선비의 나라'에서 선비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가 망하자 집안 전체가 땅을 팔아 서간도(西間島)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으로 취임한 분이 바로 임청각의 주인인 석주 선생이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있자 김동삼, 유인식 등과 안동협동학교를 세워 국민계몽 운동을 전개했고, 나라가 망한 후에는 만주 길림성 유하현에서 양기탁, 이시영 등과 신흥강습소를 세워 교육과 군사훈련을 하면서 간도를 중심으로 독립투쟁의 기반을 만들었다.
임청각 사람들은 임진란 때도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대었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는 집안 전체가 독립투쟁을 하였고,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 잘 먹고 잘 살 때 임청각 주인은 1932년 서간도에서 눈을 감는다. 민족의 큰 별이 졌다. 그 아들 손자들이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면서 임청각의 후손들은 그 명맥만을 겨우 유지한 채 광복을 맞이한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제 때 정신대, 종군위안부는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등 역사의 망언을 일삼아 온 도쿄도(東京都)의 지사다. 이 사람이 2009년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중국에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이 북한을 문명사회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과거 한일병합과 중국병탄의 논리도 서구의 압력에서 동아시아가 모두 사는 길은 중국과 조선이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데, 일본이 이 잠을 깨워 동아시아 공영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라 위한 대의와 명분 지켜야
북한을 문명사회로 만든다는 것을 착시의 장치로 두었지만, 핵심은 우리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과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이 점령해도 된다는 논리다. 개나 돼지의 말이라면 무시해도 되지만, 일본 정치에서 비중을 가지는 인사의 말이기에 이는 규탄되어야 한다.
헌법의 영토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날뛰던 세력들도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뿐 아니라, 정부도 이 발언을 무시하는 침묵 전술로 나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잔재주가 아니라 대의와 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정종섭 서울대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