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1901~1989)의 20주기(4일)를 맞아 그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보는 학술대회 ‘우리는 왜 지금 간디와 함석헌을 말해야 하는가’가 함석헌평화포럼 주최로 3일 서울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다.
평북 용천군에서 태어난 함석헌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혼란기, 한국전쟁기, 이승만과 군부의 독재기를 살며 20세기 이 땅의 상처를 온몸에 새긴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를 동양사상, 특히 노장사상의 맥락과 융화해낸 다원주의 사상가였고 ‘씨알’이라고 이름 붙인 민중을 한국사의 주체로 본 역사가였다. 또 오산학교 등에서 후진을 양성한 교육자였고 ‘사상계’ 등을 통해 압제에 항거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일제와 소련 군정, 남한 정권의 핍박을 차례로 받았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폭력 원칙을 지킨 평화주의자였다.
포럼은 지난 세기의 역사 속에 화석화된 함석헌이 아니라, 갈등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21세기에 함석헌 사상이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비폭력 평화주의, 다원주의 가치관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와 함석헌의 공통분모를 추출, 혼란한 세계를 치유할 원리를 찾는다는 것이 이번 대회의 목적이다.
간디와 함석헌의 유산
김영호 인하대 명예교수(철학)는 함석헌이 남긴 첫번째 유산으로 ‘공공정신’을 꼽는다. 김교수는 “함석헌은 나와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며 그것에서 현대의 병든 교육과 종교를 치유할 가능성을 찾는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는 종교도 교육처럼 사유화, 상품화됐다”며 “신도를 ‘내세 보장보험’ 소비자로 취급하는 기업”으로 비판한다. 김 교수는 “종교개혁이 발생한 중세 유럽을 상기시키는 현재”를 개혁하기 위한 돌파구로, 민족공동체의 집합인 지구공동체를 지향한 간디의 ‘사르보다야’(‘모든 이의 안녕’이라는 뜻) 사상과 함석헌의 ‘같이 살기 운동’을 조명한다.
김 교수는 함석헌의 또 다른 유산인 비폭력 평화 사상의 가치를 오늘의 현실을 통해 되비쳐낸다. 그는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보듯 역사는 다시 폭력의 시대로 후퇴했다”며 “더구나 지금은 권언유착 속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언어폭력, 재벌과 정치가 국민을 우롱하는 정경유착의 폭력 등 ‘돈을 무기로 한 폭력’이 난무한다”고 진단한다. 그는 “자기희생이 전제된 간디, 함석헌의 비폭력은 추상적 단계에 머문 종교의 자비나 사랑과는 다른 것”이라며 구체적 수단으로서 평화사상의 성찰 필요성을 강조한다.
함석헌의 유산이 오늘날 갖는 세 번째 가치로 김 교수가 지목하는 것은 다원주의 종교관이다. 그는 “한국사회 종교 이해의 협착성과 신앙의 보수성, 배타성은 선진 사회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종교가 심리적으로 일시적 망각을 가능케 할 뿐, 자유를 구속하는 또 하나의 질곡이 됐다”고 질타한다. 한 종교의 교리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종교를 회통하는 간디와 함석헌의 종교관이 절실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저항하는 것이 인간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함석헌의 저항정신을 조명한다. 김 전 관장에 따르면, 함석헌은 인격을 저항으로 인식했다. “함석헌은 저항을 존재론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했다. 저항에서 인격을 찾고, 인격의 원리로서 저항을 택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런 면모는 종교관으로도 이어지는데 함석헌은 <씨알은 외롭지 않다> 라는 저서에, “아마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하던 그 말씀이 저항이었을 것이다. 말씀은 근본이 반항이다. 가슴 속에 갇혀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기… 그것이 곧 말씀이다”라고 썼다. 씨알은>
김 전 관장은 이런 저항정신이 비폭력이라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의미를 ‘폭력으로 무장한 구조악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악한다. 그는 “저항하는 사람이 영웅주의에 빠지면 이미 지배에 순응하여 말려든다”며, 함석헌의 비폭력주의를 “감정적이거나 권력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실존적인 것”이라고 분석한다. “함석헌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식견과 학식을 갖췄지만, 그것은 행동과 실천을 위한 군량미였다”는 것이 김 전 관장이 보는 함석헌의 본령이다.
공교육 혁명가, 함석헌
이치석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은 ‘공교육 혁명가’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함석헌의 삶을 살핀다. 이 위원은 ‘국민교육헌장’ 폐기 운동 등 미시적 관점에서 벗어나, 함석헌의 교육관 전체가 가졌던 선진성에 주목한다. 함석헌은 50여년 전 “졸업장이 있어야 출세한다는 사회제도 때문에 학교가 있는 것이지, 학교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공장이지 학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이 위원은 “함석헌의 지적은 반세기를 넘어 오늘날 적중한다”며 “교육의 본질?인간의 조건에서 찾고, 학교체제의 전면적 개혁을 주장한 것은 현재에도 유효한 공교육의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또 함석헌이 1973년 세웠던 천안 구화고등공민학교에서 오늘날 대안학교의 씨앗을 찾기도 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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