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50)씨는 서울 청담동의 엘루이 호텔 객실관리부에서 객실 벽지와 카펫 등을 교체하고 보수하는 인테리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박씨는 회사의 구조조정에 의한 명예퇴직, 잇단 사업 실패, 막노동, 비정규직 해고 등을 겪은 뒤 지난달 4일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다. 결코 평탄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지만, 박씨는 "내가 살아온 길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라며 웃었다.
박씨는 호텔업계 경리와 회계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서울과 충북 충주에 있는 3곳의 1급 호텔에서 20년간 경리 회계 분야 업무를 해 오던 중, 2000년에 몸을 담고 있던 호텔의 구조조정으로 퇴사했다. "당시 호텔의 경리부장이었는데요, 구조조정 명단을 만든 제가 스스로 저를 자른 셈입니다."
호텔을 나와 시작한 사업은 치킨집이었다. 고향인 충북 청주와 경기 성남에서 잇따라 치킨집을 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조류독감 탓에 파는 닭보다 냉장고에서 상해 버리는 닭이 더 많았다. 치킨집을 완전히 닫은 것은 2005년이다.
치킨집을 접으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새벽 인력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노느니 아이들 학비라도 벌자"는 생각이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비정규직이더라도 직장에 다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2006년 7월1일에 서울의 한 외국인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제2의 직장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했지만 세상은 매정했다. 정확히 입사 2년 뒤인 지난해 6월30일에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다. 비정규직이 한 기업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비정규직법 탓이었다. "억울했죠. 법도 원망스러웠구요. 어떻게 합니까. 칼자루는 회사가 쥐고 있는데…"
실업급여라도 탈 생각으로 집 근처 고용지원센터에 갔다. 그 곳에서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었다. 노동부 산하 한국폴리텍대학 성남캠퍼스에서 중고령자들을 위한 3개월 직업훈련과정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도배 훈련과정에 들어갔다. 도배는 손이 빨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씨가 무엇보다 놀란 건 강사의 열정이었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라고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준 것 같아요." 덕분에 박씨는 과정이 끝나자마자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혼자서 3시간 안에 가로 세로 높이 각각 2m의 방 하나를 실수없이 도배해야 하는 실기시험으로, 합격률이 50%가 안 되는 어려운 시험이다.
도배자격증을 들고 호텔업계의 아는 사람을 찾아가 지금의 직장을 소개받았다. 예전 호텔 에 비하면 월급은 절반밖에 안 되지만 그는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단다. "과거의 화려한 생활을 못 떨쳐 직장을 못 구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왕년에'라는 생각을 못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김일환 고용정보원 홍보협력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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