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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인권위 축소는 국가적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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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인권위 축소는 국가적 손실

입력
2009.0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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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가 세계화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를 살리려는 여러 정책이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의 칼날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숨죽이게 하는 기막힌 시국이다. 그 가운데 하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릿발 같은 칼날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인원을 대폭 줄이고 구조도 크게 손질한다니, 거의 기능이 마비될 수준이다.

약자보호 역할 긴요한 때

정부가 어려운 때에 일부의 희생을 통해 사회 전체 생산성을 회복할 목적으로 방만한 공적 조직과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한편 희생된 사람들을 다른 정책으로 감싸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구조조정에 희생돼 피폐한 처지에 있는 서민과 약자를 돌볼 국가인권위원회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방향타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다.

오랜 독재의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한국사회는 불신과 대립이라는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낭비를 없애고 사회적 약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핵심적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그 중심적 기능을 담당할 국가인권위원회를 2001년 설립하게 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과, 전문적인 행정가, 점차 국제화되어가는 인권업무를 위한 국제 전문가들이 모여 여러 비인권적인 법적 절차의 수정을 제안, 실현시켰으며 국민 전체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교육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인권위원회는 복잡한 절차 때문에 접근이 힘든 법원에 가기 전에 권리구제와 화해의 역할을 따뜻하게 제공하여, 국민들이 그 어느 곳보다 신뢰하고 우선적으로 찾는 기관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다. 전 세계 120개국에 설치되어 있는 국가인권기구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어, 한국의 국가 위상을 크게 높이는 외교 중추와 같은 곳이 되었다.

유엔은 인권과 평화, 개발을 세 개의 축으로 하여, 총회 밑에 인권이사회,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를 두고 있다. 전쟁은 인류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 가장 심각한 재앙이며, 빈곤은 최우선적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세계의 과제인데, 이 두 개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인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엔은 전 세계 회원국에 인권을 관장하는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으며, 현재 120개국의 국가인권기구는 유엔의 우산 아래 자체 협력체제(ICC: 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도 정비하고 있다. 이 ICC에서 현재 한국은 부의장국이며, 2010년에는 의장국이 될 전망이다.

우리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와 그 후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보면서, 경제회복이 사회통합 없이 진행될 경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보았다. 이제 또다시 구조조정이라는 무서운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사회의 분열과 정부와의 대립은 불을 보듯 명확히 다가온다. 이때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현명한 정부라면 놓칠 수 없는 열쇠이다.

일거양득 기회 살려야

더욱이 국가 브랜드가 자칫 떨어질 위기에 있는 한국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를 포괄하는 세계인권기구의 의장국이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면, 이것은 내적 화합과 동시에 국제적 지위도 획기적으로 올리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주 시급하게 2010년으로 다가온 ICC 의장국 선거를 우리 정부는 적극 도와야 한다. 이런 때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규모를 크게 줄인다든가, 독립성 훼손을 초래할 어떠한 조치라도 취하는 것은 우리 국가의 내적, 외적으로 치명적이고 심각한 손실이 될 것이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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