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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물건너간 '읍참마속'

입력
2009.0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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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의 해결책으로 한나라당 내부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에둘러 얘기를 꺼낸 후 침묵시위 형태로 소극적 주장을 펴는 와중에, 엊그제부터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읍참마속의 상황은 물 건너갔다. 당장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해임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이젠 인사의 문제이며 정략의 차원이지 백성들은 이미 그것을 '읍참'이라고 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싸움에 진 장수 마속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몹시 아끼던 부하였음에도 참형을 재가한 뒤,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읍(泣)'이다.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제갈공명이 실제로 많이 울었는지, 우는 시늉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눈물을 뿌리면서 수족을 잘라냈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군 내부에 퍼지고 백성들 사이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용산참사 수습시기 이미 놓쳐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천하의 제갈공명이 눈물을 뿌렸다는 믿음은 군심(軍心)과 민심(民心)에 감동을 만들었다. 특히 부하 마속에게 싸움을 잘못해 패배한 무능을 추궁한 것이 아니고, 내부 군령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즉각 물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후 군ㆍ민 모두 기강이 뚜렷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눈물이 감동으로 변하고, 감동이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읍참'의 시기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소설 같은 요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두 가지 정도의 감동이 있었겠다. "비록 내정자의 신분이지만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습니다. 개인의 과오 여부는 나중에 따질 것이고 경찰총수로서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임명권자도 저의 뜻을 헤아리리라 믿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불법ㆍ폭력시위는 다시는 있어선 안 되며 법질서는 엄정히 지켜져야 합니다."

다른 하나,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책임을 묻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은 물론 앞으로도 불법ㆍ폭력시위를 일삼는 세력에겐 엄정한 공권력을 행사할 테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줄줄 흘려야만 눈물이 아니다. 국민의 감동이 없을 수 없다.

진상을 조사하는 검찰의 발표를 들어보고 '읍(泣)'이든 '참(斬)'이든 궁리해 보겠다니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사건의 직접 원인인 화재와 관련, 검찰이 열흘 가까이 수사해서 내놓은 것은 '계단 통로에 뿌려진 액체는 시너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과 '그 시너를 농성자가 부었다고 짐작한다'는 것이다(29일 발표). 그 정도의 가능성과 짐작을 사건의 진상이라 할 수 없으니, '선(先) 진상규명'의 진상이 나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듯 하다.

이미 시기를 놓쳤으니 '읍참의 감동'은 물 건너갔다. 용산 참사를 재료로 하여 어떻게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것인가 하는 속셈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김 내정자의 해임 여부는 경찰 인사문제의 일부로 되어 버렸고, 고질적으로 존재하던 전철련의 불법ㆍ폭력성이 부각되면서 법질서 파괴의 주범 중 하나로 부상했다. 내정자 해임과 유임 중 어느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공권력을 더욱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저울질만 하고 있다.

국민이해 구할 부담 새로 남아

뻔한 얘기지만 법질서 파괴 요인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공권력을 보다 강력하게 휘두르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민주적이다. 자발적으로 줄어들게 해야지 억지로 누르면 반작용만 커지게 됨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나라다. 경찰은 경찰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읍참마속의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읍'할 마음이 없고, '참'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여긴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일 순 있겠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하든 이제 국민은 감동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따르고 실천하려는 마음은 생겨날 여지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정부는 또 다른, 더 큰 부담을 덤으로 떠안게 된 셈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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