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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영등위 등급판정 시대착오

입력
2009.0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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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영화 제목을 기억하거나 들어봤는지. 만화가 이현세씨의 인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1986년 이장호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낸 작품이다.

제목만 보고 '이장호 감독의 자기 이름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면 억측에 불과하다. '공포'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영화 제목에 써서는 안 된다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심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서슬 퍼렇던 제5공화국 시절 제목만 손을 댄 '외인구단'의 경우는 그나마 애교에 속했다. 같은 해 김수용 감독의 '중광의 허튼소리'는 공륜에 의해 13장면을 가위질 당한 만신창이로 겨우 극장에 걸렸다. 항의의 표시로 김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니 그 충격이 가히 짐작이 간다.

악명 높았던 공륜의 후신이 영상물등급위원회다. 영등위의 초대 위원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수용 감독이었다. 김 감독의 한풀이가 작용했을까 아니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 영등위는 예전 같으면 단지 남녀의 성기나 음모가 나왔다는 이유로 외설로 낙인 찍혔을 예술영화들에 일반 극장 상영이 가능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잇따라 내줬다.

영등위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사그라진 대신 영등위가 진일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최근 영등위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사회적 공감대와 어긋나는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집단으로 여겨지는 법원이 2007년 영등위에 의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사실상 개봉이 봉쇄됐던 영화 '숏버스'에 상영 허가를 내린 최근 판결은 영등위의 시대착오성을 적시한다.

특히 주가조작을 다룬 범죄물 '작전'(2월 12일 개봉)에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것은 영등위의 존재 의미마저 의심케 한다. '청소년들이 증권과 관련된 용어와 주가조작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영등위가 영화사에 제시한 등급 판정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청소년들이 너무 어려운 영화 내용을 못 따라가 정신적 공황에 빠질지 모른다고 우려한 것일까. 등급 판정에 '친절 정신'이 지나치게 작용했다 할 수 있다.

너무나도 '친절한' 영등위의 판정에서 관객의 정신건강을 위해 영화 제목에 '공포'라는 단어의 사용을 분연히 일어나 막았던 공륜의 행태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걸까.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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