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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MB식 법치'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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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MB식 법치'의 가벼움

입력
2009.02.03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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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법 질서'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왠지 조마조마 했는데, 연초 큰 참사로 이어졌다. 일이 벌어진 곳이 이 대통령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개발주의'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용산 참사를 두고 어떤 보수 논객은 이 대통령의 운(運)을 들먹였다. 취임 직후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르면서 정국 주도권을 잃은 데다, 숨돌릴 틈도 없이 경제위기 쓰나미가 몰아쳐 취임 첫해 죽을 쑤었는데, 집권 2년차를 맞아 전열을 가다듬고 뭔가 해보려던 시점에 또 다시 '불운'이 닥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산 참사를 우연이나 운으로 돌리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경찰이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무모한 진압작전의 배경에 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해온 '법 질서 확립' 지침이 작동하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법치주의의 명분에 반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대전제는 법이 정의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믿음, 법 집행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힘있는 사람들이 그 힘을 이용해서 저지르는 범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 질서 확립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현실은 어떤가. 법 질서 확립을 내세운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특별사면으로 많은 비리 기업인과 정치인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내 임기 중에 발생하는 비리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전 정권 시절 비리는 용서하고 자신의 재임기간 발생하는 비리는 엄벌하겠다는 태도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정권이 바뀌면 풀려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법치주의를 해치는 요인이다.

이 대통령 자신은 과거 선거법 위반과 증인도피 혐의 등 실정법 위반으로 대선 과정에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그 일에 대한 분명한 설명 없이 대통령이 된 후 과거를 잊은 듯한 그의 법 질서 발언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주로 불법시위나 파업과 관련해서 나왔다는 사실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그는 지난 연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낮은 이유를 알아보니, 첫째는 준법의식 미약이고, 두 번째는 노사문제, 세 번째는 북한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청와대 대변인은 "미약한 준법의식은 우리의 시위문화를 뜻한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힘있는 사람, 가진 사람, 공직자가 먼저 법을 지키고 공정하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발언의 초점이 불법시위와 불법파업에 맞춰져 있었음은 전후 맥락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불법시위가 정당화될 순 없지만, 그 원인과 배경은 놔두고 드러난 행위만 문제 삼는 식의 법질서 확립이라면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여권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농성자들의 과격한 화염병 시위를 부각시켜 경찰의 과잉진압을 물타기 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시위와 과잉진압은 구분해야 한다. 불법시위가 있었다고 해서 6명 사망, 23명 부상의 참사를 초래한 무모한 진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참사의 근본 원인을 도외시한 채 이 사건을 단지 '정권의 불운'으로만 인식한다면,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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