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설날 스케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 해 지진 피해를 입은 쓰촨(四川)성 난민촌을 찾아가 공동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는 모습이었다. 원자바오는 설 전날인 25일 자신이 만든 요리로 난민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또 후진타오 주석은 설날 아침 열차표를 구하지 못한 귀성객들이 아우성을 치는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의 철도역을 방문하여 역무원과 귀성객들에게 신년 인사를 하고 열차표 판매 개선책을 지시했다. 명절을 인민들과 함께 하는 것은 중국 고위층의 연례 행사지만 올해 유난히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줄줄이 닥치는 '위험한 기념일'
2009년은 중국에게 매우 힘든 해가 될 것이다. 작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일에 발표된 반체제 지식인들의 '08 헌장'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데 이어 티베트 봉기 50주년(3월 10일), 톈안먼(天安門)학살 20주년(6월 4일), 건국 60주년(10월 1일), 벽신문인 대자보 등장 30주년 등 '위험한 기념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조직폭력배가 증가하고 있어 사회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경기 악화로 최근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간 농민공이 1,0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고, 노사분규와 농민공들의 항의시위가 급증하고 있다.
반체제 작가 류사오보(劉曉波)를 비롯 극작가 변호사 학자 신문기자 등 지식인 303명의 서명으로 시작된 '08 헌장'은 전국 각지의 노동자 기업인 농민 학생 퇴역군인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서명자가 6,000명을 넘어섰다. 공안 당국은 헌장을 작성한 혐의로 류사오보를 구속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서명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1977년 체코의 '77헌장'을 본뜬 '08헌장'을 읽어보면 중국에 새 역사가 태동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오랜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우리의 눈에는 승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인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누구도 돌아가는 바퀴를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재는 경제가 좋든 나쁘든 결국은 무너진다. '성공한 독재'로 인민에게 세 끼 밥을 먹이면 반드시 자유에 대한 갈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08헌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오늘 중국은 계속 권위주의 체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세계 인권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문명국 대열에 참가하여 민주제도를 구축할 것인가를 대답해야 한다…자유는 모든 인간의 가치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언론, 출판, 집회, 거주지 선택, 파업, 시위, 항의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인권은 국가가 주는 것이 아니고 천부적인 것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주기적이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 인민이 정부와 공직자를 선택해야 한다. '인자한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한 제도를 통해 현대적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현 헌법을 완전 개편하고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분리해야 한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을 분리하고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진실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과거의 학정과 불법 부정행위를 규명하여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화해를 이룩해야 한다…>
'08헌장'에 담긴 자유민주주의
1976년 유신체제를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던 우리나라의 '3ㆍ1 민주선언'이 떠 오른다. 우리의 70년대는 캄캄했지만 80년대에 민주화의 새벽이 왔고 90년대에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중국도 결국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중국의 정치변화는 필연적으로 북한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뒤집는 변혁은 예상을 앞질러 빨리 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길을 가고 있는 중국을 우리는 더 잘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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