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역사상 처음으로 법관을 상대로 한 평가 결과가 나왔다. 변호사들이 매긴 판사들의 평가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75.4점이었다. 법관에 대한 평가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평가는 재판의 직접 당사자인 변호사들이 평가를 한 것이어서 공정성 및 신뢰성 논란도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하창우)는 지난해 12월24일부터 이 달 28일까지 회원 변호사 6,000여명 가운데 491명이 서울 지역 판사 456명을 상대로 '자질 및 품위', '재판의 공정성' '사건처리 태도' 등 3가지 영역에 대해 평가한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서울변회는 회원들로부터 서울 지역 판사 700여명 가운데 456명에 대한 1,039건(중복 평가 포함)의 평가결과를 접수했으나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5명 이상 변호사의 평가를 받은 47명의 판사에 대해서만 순위를 매긴 뒤 인사참고에 활용하라며 자료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47명 가운데 최고점은 93.5점, 최하점은 45.8점이었다.
평가에서는 법관들의 막말과 무리한 재판진행 사례도 지적됐다. A판사는 변호사의 말을 일방적으로 끊는 것은 물론, 조정을 거부하자 "연수원 몇기냐, 어디서 그 따위로 배웠냐"며 무시했다고 지적당했다. B판사는 미리 결과를 예단하고 유일한 증거를 이유도 없이 배척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들의 원성을 샀다.
C판사는 공소장만 보고 피고인의 자백을 강요하거나 변호인의 변론을 억압했다고 지적됐다. "형을 높이겠다"면서 피고인을 윽박지르거나 무시하는 판사도 있었다. 판사가 의료사건에서 의사 쪽에 치우친 재판진행을 한다는 이유로 원고(환자)가 지방으로 재판 관할을 옮긴 사례도 접수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평가를 두고 "사건 일방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이 법관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성을 잃은 처사"라는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특히 대법원의 오석준 공보관은 "변호사에 의한 법관 평가는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번 평가는 어떠한 객관성도 담보하지 못해 인사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재판에서 패한 변호사가 과연 법관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평가에 참여한 변호사가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의 7.7%에 불과해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 회장은 그러나 "실제 법정에 들어가는 변호사들이 평가하기 때문에 생생한 평가가 가능하다"며 "평가 자료가 10년, 20년 쌓이면 대법관 후보자 등을 고를 때 이보다 더 좋은 근거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변회는 올해부터 연중 수시로 회원 변호사들로부터 법관평가서를 접수해 내년 2월 판사 정기인사 이전에 대법원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평가결과를 인사 등에 활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법원과 변호사단체 간의 기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