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벤처기업 휴맥스가 다음달 1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벤처기업이 장수하기 힘든 국내에서 20년을 살아 남았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것도 TV용 셋톱박스라는 한 우물만 팠으니, 의미가 남다르다. 창업자인 변대규(49ㆍ사진) 사장은 29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다른 생각'으로 일군 휴맥스 20년을 들려줬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라
"최고경영자(CEO)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하지 말고, 시장에서 필요한 사업을 하라." 변 사장은 휴맥스 20년 성장의 비결을 묻자, "전략적 결정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1989년 창업해 10년 동안 배운 것은 시장 변화를 읽고 여기서 기회를 찾아 사업을 하는 것이 공식이라는 점이었다"며 "디지털 가전이 시장을 바꿀 것이라는 변화를 감지하고 TV용 셋톱박스 사업을 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특히 처음부터 해외를 겨냥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는 "무모했지만 바른 결정이었다"고 단언했다. 국내 시장은 벤처기업이 자본을 축적하고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처음부터 다양한 기회와 넓은 시장을 바라보고 시작한 사업이 기업의 내성을 키웠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품목 확대보다 시장을 확대하라
"글로벌 기업의 성공 요인은 한 품목으로 시장을 넓힌 것이다.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긴다." 다른 기업들이 여러 제품으로 품목을 확대할 때 변 사장은 셋톱박스 한 가지로 유럽, 미국, 일본 등 시장을 넓혀갔다. 덕분에 매출이 창립 첫 해 1억2,500만원에서 지난해 7,696억원으로 6,000배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했다. 영업이익도 89년 300만원에서 지난해 22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간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회사는 공적 기관이다
휴맥스가 계속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변 사장은 89년 가정용 CD 반주기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95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TV 셋톱박스로 진로를 수정했다. 96년 유럽 수출로 1,0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사업을 확대했지만, 97년 제품 절반이 품질 불량으로 되돌아와 도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 때문에 임금이 30% 깎였으나 대다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변 사장은 "자기 회사라는 주인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주인의식은 "팀원은 팀장 입장에서, 팀장은 사장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사장은? 여기서 변 사장은 남다른 철학을 보여줬다. "사장은 회사가 공적인 기관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회의 주인으로서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 사장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말할 수 있다."
기술력으로 버틸 수 없다
요즘 변 사장은 10년 후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깊다. 앞으로 10년은 과거 10년과 확연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기술개발과 양산 능력을 결합한 모델로 성장했다"며 "그러나 이제 한국의 성장 모델은 끝나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양산 시설은 비용이 저렴한 중국 등으로 빠져나갔고 기술 경쟁력도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변 사장은 이미 이런 조짐을 느끼고 있다. 그는 "3년째 공채를 하고 있는데, 이공계 출신 학생들의 기술개발 능력이 5~10년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며 "기술개발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이 향후 10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일본의 '카이젠'(改善)처럼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조직문화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변 사장은 "한국인은 개인 능력이 뛰어나지만 조직화됐을 때 충분한 역량이 나오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맞는 경영기법, 조직문화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사장은 올해 세계 경기가 어렵지만 미국 시장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7,500억~8,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휴맥스의 숙원인 1조원대 매출은 내년에 가능할 전망이다. 그는 "올해 튀어오르지 못하니 내년에 튀어오를 것"이라며 "1조원대 매출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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