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아기 기저귀 가는 일을 미루다가 남편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표정인데 그는 모른다, 여자들의 로망을. 잘 만든 드라마라곤 할 수 없다. 도예가로 이름난 고등학생 등 허황된 설정이 한둘 아니다. 그런데 그 70분 동안 나는 거센 말들과 행동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홀연히 10센티쯤 부양한다.
원작 만화를 진작 독파한 큰애와 나는 원작에 못 미치는 각본과 연출력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F4가 등장할 때면 '므흣'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순정만화에서 나온 듯한 모습 '자체발광'이다. 롱코트를 입은 '구준표' 정말 멋졌다. 원작의 제목은 '하나요리당고'이다. 꽃보다 당고란 뜻인데 당고는 일본의 군것질인 꿀 바른 떡꼬치이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금강산도 식후경쯤 되겠는데 당고를 음이 비슷한 단시(남자)로 바꾼 것이 재미있다.
원작 만화가 일본에서 연재된 것은 1992년, 버블 경제의 붕괴 후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는 장기 침체 때이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부모와 잡초처럼 일어서는 여주인공, 아무 조건 없이 그녀를 사랑하는 갑부 도련님까지 일본의 독자들이 열광했던 이유가 있다. 큰애는 보는 내내 '금잔디'가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내겐 남자보다 꽃이다. 눈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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