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감독 지아장커(賈樟柯). 일명 '지하전영'(地下電影ㆍ중국 독립영화)의 기수로 이름을 알린, 올해 나이 서른아홉 살의 그는 영화 '임소무'와 '세계', '스틸 라이프' 등을 디딤돌 삼아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전작들이 여전히 마음을 울리고 있는 시네필이라면 그의 최신작 '24시티'를 놓쳐서는 안 될 듯하다.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위치한 군수공장 '팩토리 420'은 1950년대 건립된 이후 노동자 수천명의 삶의 터전이었다.
냉전시대를 가로지르며 미 제국주의 타도의 선봉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이 공장은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결국 '24시티'라는 고급 고층아파트단지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영화 '24시티'는 팩토리 420과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50년 현대사를 돌아본다. 사람들의 눈물어린 사연 속엔 대약진의 처참한 실패와 문화혁명의 고통스러운 과거가 녹아들고, 그들의 웃음 속엔 영광의 역사가 포개진다.
개개인의 삶을 통해 중국 역사를 들추지만 감독은 환호성도, 날선 비판도 삼간다.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시대를 견뎌내고 살아온 인민들의 삶을 어루만진다.
눈길을 끄는 점은 형식의 실험성이다. 공장 시설 등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담담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할 때 카메라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너는 점점 사라지지만 나에게 찬란한 삶을 주었단다' 등의 시구가 곁들여진다. 이 한없이 정적이며 시적인 영화는 정중동의 미학을 발현하며 카메라의 움직임과 흔들림으로 가득한 여느 영화보다 관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다큐멘터리임에도 일부 인터뷰에 배우를 동원한 점도 이채롭다. 현실이 허구를 껴안고, 허구가 현실을 위안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는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서울 신문로 씨네큐브에서 단독 상영한다. 전체관람가.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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