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팍팍해도 고향 가는 길에 나서면 마음만은 설???우리네 명절 인심이 극심한 불황에 저만치 밀려났다.
취직 못한 청년이나 실직자는 물론, 얇아진 월급 봉투에 한숨만 는 직장인들 중에도 귀성을 포기한 경우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전남 장성이 고향인 최모(34ㆍ회사원)씨는 부모님께 용돈 20만원만 보내드리고 연휴 내내 집에서 쉬기로 했다.
"네 식구의 왕복 교통비도 만만치 않은데, 선물 준비에 조카들 세뱃돈까지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직장인 1,76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번 설에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32.2%에 달했다. 이 가운데 12.6%는 지난해 설에는 고향에 다녀왔으나, 올해는 마음을 바꾼 이들이다.
귀성을 포기한 이유로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가 41.4%로 가장 많았다. 경제 불황이 정겨운 가족 상봉마저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민들이 지갑을 굳게 닫으면서 명절 특수도 사라졌다. 유통ㆍ택배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설을 앞두고 선물세트 판매량과 배달량이 지난해에 비해 30~40% 가량 줄었다.
모 할인마트 관계자는 "설 선물세트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든 가운데, 가격대도 1만~3만원대의 저가 선물세트만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원 신모(42)씨는 "설을 맞아 평소보다는 배달량이 늘었지만, 작년 추석 때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며 "고기나 굴비세트 등 고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명절을 앞두고 잦아진 가정불화, 부부싸움의 원인도 팍팍해진 살림살이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양모(39)씨는 설날 고향인 충남 서산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이다.
그는 "2007년 집을 사면서 고향에 사는 형에게 1년 안에 갚기로 하고 5,000만원을 빌렸는데 불황 여파로 아직 못 갚았다"면서 "그 일로 형과 자주 다투게 돼 부모님만 잠깐 뵙고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은 "설을 앞두고 '삶이 허망하고 기분이 우울하다'는 상담전화가 크게 늘었는데, 대부분 경제적 압박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과거에는 부부문제 상담도 외도나 가정폭력, 고부갈등이 주를 이뤘던 반면, 요새는 경제적인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이들이 늘었다. 23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성인 남녀 1,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41%가 '설이 즐겁지 않다'고 답했다. 2002년 35%에 비해 6% 포인트나 늘었다.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김성환 기자 blu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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