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석기 사퇴 카드'를 쉽게 쓰지 않고 있다. 당초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의 후폭풍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23일에도 김 청장은 사퇴하지 않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조기 교체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왜 머뭇거리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 청장 퇴진에 부정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진압을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때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는 순간에도 준법과 질서의 중요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촛불이 잦아든 이후 이 대통령이 맨 먼저 내세운 것도 법치 확립이었다. 따라서 김 후보자의 조기 퇴진은 법치에 대한 신념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이 끝까지 김 청장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날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에서 김 청장을 제외한 것은 사실상 사퇴를 시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야당의 공세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김 청장이 조기 사퇴할 경우 야당은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을 포함, 추가 문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누차 검찰 수사로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후 책임소재를 가리겠다고 밝힌 바 있어 조기 사퇴는 이런 수순을 무너뜨리는 측면도 있다. 아울러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총수를 물러나게 할 경우 경찰 사기는 물론 통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현실적으로 후임자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있다.
이런 이유에다 공세적 측면의 전략도 있다. 이번 시위의 배후에 있는 전국철거민연합의 불법행위를 부각시켜 정부의 잘못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설 연휴 이후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오면 그 때 책임소재를 가려 문책도 하겠지만, 전철연 등의 불법행위도 낱낱이 드러내 국민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검찰 수사결과로 전철연의 숨은 행위들이 드러나면 경찰의 진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여론도 상당수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석기 카드를 놓고 시간을 끌수록 사태가 악화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 후보자가 조급하게 진압을 결정하는 무리수를 뒀고, 과잉진압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한 중대사안인 만큼 조기 경질대신 복잡한 정치게임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국민정서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법치 확립보다는 책임회피, 오만으로 인식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무리한 진압으로 사람이 죽은 이번 사건을 법치확립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은 지는 게임에 매달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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