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선배가 있다. 대학 시절부터 알았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서로 미혼일 땐 자연스럽게 어울려 밥도 먹고 술도 마셨는데 유부남, 유부녀가 된 뒤로는 적당한 간격을 지켜왔다. 동창회나 아는 이의 시상식 뒤풀이 자리, 사람들 틈에서 얼굴을 알아보고 안부를 주고받는다. 술 취한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다니는 동안 비교적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내 옆이나 앞에 자연스럽게 그 선배가 앉았다 간다.
그는 씩 웃고 묻는다. "어디 살아요?" 그때그때 사는 곳이 달라 동네 이름도 바뀌었다. 그때마다 선배는 내가 사는 곳에 옛 애인이라도 살았었다는 듯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날 사는 곳을 말하자 선배 특유의 그 표정이 또 나왔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군." 또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서울로 이사왔다. 대림동요, 라는 내 대답에 "드디어 들어왔군!" 그가 반색했다. 선배는 내 행보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인천에서 시작해 서울로 들어오기까지의 길다면 긴 내 족적을 그려보았다. 가만 생각하니 아무래도 내가 서울로 이사온 건 그 선배의 관심 때문이 아니었나라는 생각, 그리고 그건 서울로 집을 구해 들어와 일가를 꾸리기까지 선배 자신의 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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