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활동을 다녀온 아이가 코에 콧물이 맺히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엄마들은 우선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이놈의 감기 초전박살내겠다'는 각오로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나 약국을 찾는다. 거기에 열까지 나면 진행 속도는 더욱 일사천리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엄마 손에는 약봉지가 한가득이다. 콧물을 멈추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나 비충혈억제제를 받고, 기침해소에는 진해제, 가래가 나온다고 거담제,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해열제를 처방 받는다.
감기약이 소화장애를 불러오므로 가끔은 소화제도 들어 있다. 이도 모자라 주사까지 한 대 맞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엄마들. 실로 대한민국은 감기약 천국이다.
그런데 지난해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엄마들의 뒤통수를 치는 발표를 했다. 2세 미만 영ㆍ유아에게 비처방 감기약을 먹이면 안 된다는 권고사항이었다. 비처방 감기약 때문에 발작이나 환청, 호흡곤란, 의식불명이 생기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EBS TV '다큐프라임-감기 편'에 나온 외국 의료진은 국내에서 감기에 처방된 약품과 처방목록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내 아이라면 먹이지 않을 겁니다."
2세 미만 영유아만이 문제가 아니다. FDA 보고서는 "소아 감기약이 12세 미만 어린이에게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 감기약에 대해 어린이를 상대로 한 임상시험은 당시까지 단 11건에 불과했다.
엄마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가 아이에게 먹인 약들은 다 뭐였을까요?" "어쩐지 약을 먹이면 더 자주 앓는 것 같아요." "아이가 감기 걸렸을 때 어쩌라는 말인가요?" 아이를 위한답시고 먹였던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엄마들은 그 동안의 치료습관을 후회하며 가슴을 쳤다.
감기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면역을 증진할 수 있는 '유일한' 질환이다. 감기에 걸렸다 낫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치료과정을 학습한다. 스스로 열을 식히는 법, 면역세포를 늘리는 법, 바이러스를 죽이는 법, 몸 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법에다 소화능력 복구하는 법까지 배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열이 난다고 임의로 해열제를 먹이고 콧물이나 기침이 난다고 눈앞의 증상만을 없애는 데 급급하다 보면 아이가 스스로 병을 이겨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소아과에서는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별다른 처방 없이 휴식과 수분 섭취만 강조한다.
한방에서는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한방 과립제를 처방한다. 한방 과립제는 아이마다 감기를 이기는 데 필요한 기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북돋아 앓는 과정을 빠르게 학습시켜준다. 또한 몸의 순환을 도와 감기를 떨칠 수 있게 면역을 높여준다. 대증 치료에 중점을 둔 양방 치료와는 원리가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올바른 치료습관이다. 아이가 두어번 감기를 진지하게 앓고 나면 하루 이틀 만에 감기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눈 딱 감고 감기로 인한 39.5도 이하의 열에 해열제를 쓰지 말아보자.
그 이상이 되면 집에서 해열제를 먹이지 말고 바로 의료기관에 데려가 발열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서랍장에서 잠자고 있는 감기 상비약은 모두 내다 버려라. 지금 당장.
최혁용ㆍ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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