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ㆍ 조선사에 대한 채권단의 신용위험 평가 결과가 나왔다. 이번 심사 결과는 금융감독원이 기업구조조정 전담반을 설치해 산고를 거듭한 끝에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시장의 지배적 반응은 우선 퇴출 기업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당사자들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구조조정 목표ㆍ방향 분명히
구조조정의 첫번째 대상인 건설업의 경우, 미분양 아파트가 16만〜30만 채에 달해 금액으로는 부실 규모가 최대 6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선정된 부실기업 수는 이러한 대규모 부실 규모에 비해 충분치 않다는 분석이다. 심사기준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선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의 가장 주요한 명분이다. 정리되는 기업을 양산하면 금융기관이 곧바로 부실을 떠안게 되는 구조조정 방식의 본질적 한계도 1차 신용평가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어쨌든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작업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설 연휴가 지난 28일부터 이번 심사 대상에서 빠진 건설ㆍ조선 기업을 대상으로 2차 평가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내외 경기 침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앞으로 자동차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구조조정의 칼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서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려면 1차 평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기업 구조조정의 목적과 방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때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는 외환위기 충격으로 한 순간에 부실 덩어리가 된 기업을 사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급속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살 수 있는 기업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사전적 대비책이다. 다시 말해 이번 구조조정의 목표는 장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반드시 살려야 할 기업에 국내 자원이 원활히 공급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이를 토대로 투자 고용 성장의 선순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이러한 목표에 충실한 구조조정을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신용평가 기준과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선 평가기준을 단순히 재무구조의 건전성에만 맞출게 아니라, 미래 성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부품 기업이 일시적 자금난에 빠졌다면, 이 기업은 회생 명단에 올려야 한다.
이처럼 평가기준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한편, 심사결과 발표도 퇴출 낙인을 찍는 부정적 방식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긍정적 방법으로 고쳐보면 어떨까 한다. 퇴출 또는 기업개선 대상 명단이 아니라, 우량 기업 명단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자금이 우량 기업으로 흘러가게 하고, 나머지 기업은 어떻게 든 독자 생존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 늘려야
이처럼 기업 구조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기업 평가와 자금지원을 위한 합리적 기준과 유인책 등을 제시하여 구조조정의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 신용평가에 따른 채권은행의 금융지원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금융기관 사이의 이견을 좁히고 기업을 위한 자금지원이 최대한 신속히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시중자금이 제대로 유통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대출위험 부담도 함께 줄여주어야 한다. 당분간 정부가 은행권의 자본 여력을 확충 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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