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최후에 이르러 지나온 나날을 되짚어볼 때 가장 또렷이 선을 그을 지점에 '그림책'이 있다고, 시시때때 망설임 없이 말하곤 한다. 시를 쓰다가 그림책 글도 쓰게 됐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림책을 만나기 전과 후의 내 삶은 참으로 달라졌다.
무엇보다 낯가림 심하고 번잡 떠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 폐차된 버스로 그림책도서관을 만든다는 둥, 자원활동가 양성 교육을 한다는 둥, 아이들과 밤새워 그림책을 읽는다는 둥, 오라는 대로 부르는 대로 달려가 그림책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된 것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놀라워한다.
올해 스무 살이 되는 딸아이가 네 살 때, 뭔가 읽어주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찾던 무렵이었다. 마침 세계적으로 이름난 그림책들이 번역되어 나와 한 권씩 사서 읽는데,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내가 푹 빠져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짤막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글에 색채며 구도며 채색기법 뛰어난 그림이 더도 덜도 없이 맞물려 자아내는 이야기가, 거듭거듭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감동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특히 그림책의 글이 아이들 청소년 장년 노년 모두에게 제각기 층위가 다른 울림을 주는 (효율성 최고의 소통성을 지닌) 시라는 점, 온갖 사조와 유파의 예술성 높은 그림이 그 시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 사로잡혔다.
서가에 그림책이 늘어날 때마다 그 한 권 한 권에 문화와 예술의 최대공약수가 담겨있다는 걸 확신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림책을 읽어주겠다고 낯선 유치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오묘하게도 그 즈음 그림책 글을 쓰고 번역하라는 청탁도 들어왔다. 아아, 그렇게 해서 지금의 번잡에 이른 것이다. 과연, 한 사람의 생에 있어 모든 책은 '출현'이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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