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설 잘 쇠셨습니까? 그래, 긴 연휴 동안 무얼 생각하며 보내셨습니까? 저는 새봄부터 전 국민이 화두로 삼고 살아야 할 게 뭔가 생각해봤습니다. 이 봄, 자칫하면 세계 10위 안팎으로 발전시켜온 우리나라가 그대로 주저앉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 철학을 '부동이화(不同而和)'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이 말은 '서로 화목하되 자신의 본질은 잃지 말라(和而不同)'는 공자님 말씀을 어순만 바꾼 것으로서, '다름을 인정하되 화목을 꾀하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물론 모두'화'와 '부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요. 화가 없으면 멀쩡한 사회도 분열을 일으켜 갑자기 멸망하고, 부동이 없으면 정체를 거쳐 서서히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자님 말씀의 초점은 자아 쪽(不同)에 가 있고, 제 이야기는 전체 쪽(和)에 가 있습니다. 감히 인류의 스승의 말씀을 바꾼 것은, 그 분의 말씀은 자아를 상실하기 쉬운 농경사회의 윤리적 지표를 반영한 것으로서, 너와 나는 물론, 같은 나도 아침저녁으로 다른 현대에서는 화를 강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동을 강조하면서 살아왔는가는 역사를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니, 지난 한 해 동안 여야가 다투다가 다음 달 2일의 임시 국회로 미룬 쟁점 법안들을 비롯하여, '용산 참사'에 대한 태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피해 보는 계층이 있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하나도 뒤로 미뤄둘 수 없는 현안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장점이 많은 것으로 합의하고, 가려진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보완하여 처리해 주십사 부탁 드리려고 부동이화를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나 경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학문도 이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자연과학은 각기 다른 현상에서 공통점을 모아 숨겨진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고, 사회과학은 정(正)과 반(反)을 합치면서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학문이고, 인문과학은 각기 다른 것들을 합쳐 새로운 화(合)를 만들면서 논리화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부동에서 화를 찾는 게 학문이고, 그런 사고 방식을 가르치는 게 교육이고, 그런 의식구조가 보편화할 때 우리 사회에 새로운 위기가 밀려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 여러분! 지금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얇아지는 호주머니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대책 없는 부동만을 강조하는 정치와 그에 따라 춤추는 경제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그 분들이 그러는 것은 부동이화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내게 불리하다고 떼거지를 쓰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탓이 있습니다. 부동만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배제하기로 하고, 우리나라는 국민이 더 똑똑하니까 스스로라도 다름을 결합시켜 화를 만들어냅시다. 여러분들이 애써 가꾼 조국을 이대로 망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윤석산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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