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동영상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의 멘토를 발굴해 제작한 인터뷰 동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는 ‘유니멘토’는 작년 하반기 노동부가 인증하는 사회적 기업에 신청하려다 포기했다. 인증을 받으면 세제나 인건비 등의 지원을 받게 되지만,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등 인증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가내훈(28) 대표는 “우리처럼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는 기업이 유럽에서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된다”며 “노동부는 사회적 기업을 취약계층을 위한 빈곤구제의 수단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환경 문제나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시장경쟁의 그늘을 극복하는 새로운 기업모델로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조차 취약계층에 일자리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외, 공정무역에서 친환경 의류산업까지
유럽과 미국의 사회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수익모델은 공정무역(fair trade), 환경, 문화예술 등으로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1995년에 설립돼 런던과 도쿄, 두 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의류업체 ‘피플 트리(People Tree)’는 20여 개 개발도상국의 70여 개 생산자에 대해 무역조건을 우대하고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고 있다. 또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씨가 설립한 ‘참 신나는 옷’의 모델인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은 중국 공장에서 대부분 주문 생산하는 미국 내 의류업체와 달리, 로스앤젤레스 한가운데 공장을 설립해 유사업종 임금의 2배를 주며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고용을 창출하며 유기농 면화의 친환경 옷을 생산하고 있다. 1998년 설립된 이 회사는 매출 3억 달러, 11개국 143개 직영매장을 운영할 만큼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하버드, 콜롬비아 등 세계적인 경영대학들이 사회적 기업 연구센터를 두고 사회적 기업가를 배출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원칙을 통해 케냐산(産) 차(茶)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하이랜드 티 컴퍼니(Highland Tea Company)’ 역시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 2004년 창업한 회사이다. 케냐의 차 재배농가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 회사의 제품은 미국 116개 상점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양용희 호서대 교수는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을 첫 직장으로 택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며 “특히 사회적 기업이 단순 고용창출이 아니라, 신산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현 주소
2007년 7월부터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되면서 그 해 52개, 지난해 166개 기업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저소득층이나 장애인들을 고용한 기존 자활사업체들이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취약계층 일자리 만들기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이 전개됐기 때문에 자립성이 약하고 정부 의존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의 임금 지원이라는 인공호흡기를 떼면 자생적으로 굴러가기가 힘든 기업이 많다는 것. 희망제작소 안현수 연구원은 “지금의 사회적 기업 육성 시스템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청년층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끼어 들 여지가 별로 없다”며 “굳이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가치 추구를 주요 활동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 광범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과 창업이 늘고 있지만, 이 역시 아직 시작단계에 있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업 전문가인 조용복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는 “열정으로 봉사를 할 수는 있어도 기업을 하기는 어렵다”며 “이 엄동설한에 청년들에게 ‘착한 일 하면서 돈 벌라’고만 한다면 이는 너무 낭만적 얘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기업의 정착을 위해서는 청년들의 벤처정신, 윤리정신과 기성세대의 자본과 경영 노하우가 결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SESNET) 송수정 사업운용팀장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사회적 의식이 자본을 만나고, 전문적인 경영 노하우와 결합돼야 한다”면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공존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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