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그린스토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경기 부천시의 홈플러스 부천여월점. 겉 모습만 언뜻 보면 녹색 토끼 한 마리가 크게 그려져 있을 뿐 일반 대형할인점과 별반 다른 게 없다. 하지만 주차장으로 들어선 순간, 담쟁이덩굴이 촘촘히 짜여진 철사 그물망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직은 작은 싹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삭막한 회색 주차장 풍경을 푸르게 바꾸고 산소까지 공급해줄 녹색 꿈이다. 어둡고 침침했던 주차장이 신선한 공기와 햇빛이 가득한 녹색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매장으로 들어서니 다소 어두운 분위기지만,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든다. 조도를 편안한 밝기로 맞추고, 전력 소모가 적은 고효율 조명과 반사갓을 사용한 덕이다. 천장에는 기존 형광등에 비해 최대 50%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썼다.
진열대의 층층마다 들어갔던 형광등도 맨 위와 아래칸에만 부착됐다. 주부 김정옥(54)씨는 "진열대에 층층이 들어갔던 형광등이 없어도 물건을 보고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일반 냉동식품 진열대엔 모두 투명문이 설치됐다.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화장실 내 친환경 소변기는 사용 후에도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자동여과시스템을 통해 매년 1,626톤의 물이 절약된다.
신선식품 냉동에 필요한 냉매도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프레온가스에서 이산화탄소냉매로 바꿨다. 심야에 남는 전력으로 얼음을 얼려 놓은 후 여름철 낮 시간 동안 냉방 시설로 이용하는 '빙축열' 역시 매년 12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준다.
이곳의 하일라이트는 7층 옥탑 주차장. 3대의 태양광 발전기와 6대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생산된 전기는 문화센터 전원과 휴대폰 충전기 전원용으로 사용된다. 매년 21톤 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외에도 그린스토어는 햇빛 밝기에 따라 조명을 조절해 낮 동안의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건물 내부에 단열재를 사용함으로써 난방비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저탄소 녹색 설비가 80여종에 달한다.
주부 박정금(60)씨는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가 이처럼 에너지 절감 노력에 앞장선다면 소비자들도 적극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소비자들이 자전거로 할인점을 찾을 경우 500원의 '그린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등 에너지 절감을 위한 소비자들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물류 단계의 탄소배출량도 크게 줄었다. 기존 5톤 배송트럭 대신 25톤 트럭을 이용, 기존 1,000상자 기준 3번 왕복해야 했던 것을 1번에 해결하기 때문이다. 또 2만여 직원들이 출장 때 이용하는 차량 및 유류 종류를 입력하면 탄소배출량이 자동 측정되는 탄소발자국 관리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런 노력을 통해 지난해 단위 면적 당 전년 대비 4.6%의 탄소배출량을 줄였고, 올해에는 5% 감축을 목표로 잡았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2006년 60억원, 2007년 35억원, 지난해 40억원 등 15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줄인 셈이다.
문제는 투자비다. 홈플러스는 '그린스토어'를 짓기 위해 무려 650억원을 썼다. 친환경 설비를 갖추다 보니 기존 점포에 비해 10%(30억~40억원) 가량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홈플러스는 앞으로도 100억원을 더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면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는 어떨까.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년 4억원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나는데 투자비용을 모두 뽑으려면 최소 8년 정도가 족히 걸릴 것"이라며 "그러나 기업 차원에서 사회적인 파급 효과와 신성장동력을 개발하는 차원에서 이 정도의 시간은 감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 홈플러스 에너지총괄팀장 조승호 이사"유통의 녹색화는 계속 확대될 것"
"녹색 경영은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지속 경영이다."
국내 최초의 친환경 대형 할인점 '그린스토어'를 만든 주역인 홈플러스 에너지총괄팀장 조승호(51ㆍ사진) 이사는 "제품과 소비를 연결하는 유통업체는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의 '그린스토어'는 에너지 절감과 생산, 소비자 동참 등을 통해 녹색 사회를 일궈가기 위한 유통 업계의 첫 시도. 아직 에너지 생산 보다는 에너지 절감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큰 편이다.
조 이사는 "사실 지금까지 낭비하고 있던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비용 절감 효과는 상상 외로 크다"며 "할인점과 백화점이 고객의 구매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경쟁적 마케팅의 일환으로 조명을 밝게 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조 이사는 "태양광, 풍력, 지열 등 다양한 대체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막상 어떤 설비를 갖춰야 하고,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며 "특히 그린스토어에 사용하는 태양광 기술 설비를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이 세계적으로 우수하지만, 막상 친환경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뒤지고 있다"며 "기술력이 좀 더 뒷받침된다면 녹색 전환은 훨씬 빨리 소비자들에게 파고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환경 전시관을 만드는 등 소비자 동참 유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조 이사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고객도 있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결국 소비자의 의식 변화와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녹색화를 위해서는 소비자와 제조사의 공통된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통업체들은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 이윤을 남길 수 있고 소비자들 또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통의 녹색화는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정부의 '녹색유통' 정책
정부가 추진하는 유통 산업의 '녹색 전환'(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은 '공급사슬의 녹색화'를 지향한다.
상품생산부터 제조, 물류, 유통, 최종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녹색 혁명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산과 소비의 중간 영역에 위치한 유통업체의 주도적 노력이 필수다.
실제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는 2020년까지 기존 점포와 물류센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줄이기로 했고, 자사 매장에서 판매되는 7만개 상품에 대한 탄소라벨(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표기) 부착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유통업계가 녹색 혁명을 위해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채찍과 당근을 검토하고 있다.
유통업계 온실가스 배출 실태조사 및 감축 시범사업 등을 추진,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점포에 대해선 감축 목표치를 정해주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펼칠 예정이다. 또 표준화한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 시스템을 구축, 사후관리에도 나설 방침이다.
각 개별 점포의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평가, 등급을 구분한 후 세제 지원 등도 검토하고 있다. 납품 제조업체 및 물류업체들과 유통업체들이 서로 '녹색유통 파트너십'을 맺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통업체들이 기왕이면 저탄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유통과 물류의 녹색 혁명은 결국 소비 이후 제품 회수, 반품, 재활용 등의 역물류 효율화로 이어졌을 때 완성된다. 이를 위해 재활용 가능한 표준화한 포장 박스 개발, 반품 제품의 인터넷 판매채널 구축, 폐기물류 공동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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