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게는 출산 이야기가 있다. 진통 시간만으로도 반 나절을 끄는 여자들의 수다에 군대에서 축구까지 한 남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본다. 출산이 오늘내일인 후배에게 혹시나 싶어 문자를 넣었는데 곧바로 장문의 답장이 왔다. 24시간진통끝에어젯밤수술3.6킬로우량남아드뎌탄생언니길고길었던내출산기를기대해줘. 여자들 대단하다.
어젯밤 수술로 아기를 출산하고도 그 다음날 '문자질'이라니.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출산의 진통에 시달리는 것은 인간의 여성뿐이라고 한다. 아마도 진통의 시간과 강도가 다른 동물의 암컷에 비해 길고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훨씬 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라는데 생물학자들은 이 점을 주목해왔다. 그렇다면 커다란 아기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한번도 칼이라는 걸 본 적도 없는 둘째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제 누나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가 쓰는 30cm 플라스틱 자를 들어올려서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조금의 망설임과 주저도 없이 제 누나의 어깨를 내리치는 걸 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집단무의식? 그 애의 머릿속에 저장된 길다란 물건의 용도란 칼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융이 그렇게 말한 '원형'이라는 개념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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