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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서 무박2일 몸서리친 '苦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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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서 무박2일 몸서리친 '苦향길'

입력
2009.01.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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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목포 19시간, 서울~부산 13시간,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영동고속도로 양지인터네인지(IC) 4시간’

전쟁이 따로 없었다. 선물 보따리를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한 귀성길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설 귀향 행렬이 본격화 한 24일 오전부터 25일까지 이틀간 전국 도로는 기능을 완전 상실했다. 수도권, 충남, 호남 일대에 쏟아진 최고 40㎝가 넘는 폭설은 귀성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특정 도로 할 것 없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연결되는 거의 대부분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주차장이었다. 한국도로공사는 한때 주요 구간의 예상 소요 시간 집계를 중단했을 정도다.

70km 가는데 12시간

경기 수원에 사는 최모(45.회사원)씨는 24일 오전 충남 당진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받았다. “앞이 안보일 만큼 눈이 많이 내린다. 내려오지 않는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알겠습니다”라고 아버지를 안심시킨 뒤 자가용에 가족들을 태운채 출발을 강행했다. 고향을 자주 찾는 것도 아니어서 설 귀성은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골집 까지 거리가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70㎞ 안팎이어서 아무리 밀려도 서너 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럭저럭 차가 뚫린다는 생각으로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 들른 것이 첫 실수였다. 다시 고속도로로 나오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거북 걸음을 하던 차는 서평택 IC 부근에선 아예 반시간이 넘도록 멈춰섰다. “국도로 빠져야 겠다”고 마음먹은 최씨는 IC를 겨우 빠져 나왔다가 또 낭패를 봤다. 폭설 때문에 도로와 인도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사정은 좋지 않았다. 차량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아버지 말씀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1시간을 허비한 끝에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정체는 계속됐다. 서평택IC에서 서해대교에 진입하는 10㎞ 거리를 움직이는데 2시간, 송악IC까지의 10㎞ 거리에 다시 2시간이 걸렸다. 가속ㆍ감속 페달을 번갈아 밟느라 무릎이 끊어질 듯 아팠다. 집을 떠난지 12시간 만에 겨우 당진읍 송악면 고향집에 도착했다. 최씨는 “20년이 넘게 귀성을 하고 있지만 이런 고행길은 처음”이라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고속버스 무기력

버스전용차로 덕에 주말과 휴일이면 마치 ‘나홀로 차량’ 처럼 고속도로를 싱싱 달리던 고속버스 효과도 이번 귀성길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교통당국이 이번 설에 버스전용차로에 6인 이상이 탄 승합차의 통행을 허용하면서 교통량이 전반적으로 급증한데다, 눈까지 겹치는 바람에 고속도로는 시종 무기력했다.

자가용을 두고 애써 고속버스를 택했던 공인회계사 박모(28)씨는 말로만 듣던 ‘무박 2일’ 귀향길을 톡톡히 경험했다. 박씨는 24일 오후 1시께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경남 진주행 버스에 올랐다. 출발할 때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발부터 불안하더니 역시나, 충남 천안까지 무려 7시간이 걸렸다.

그새 굵어진 눈발 때문에 고속도로 분기점이 있는 대전까지 정체는 더욱 심해졌다. 차창 밖엔 10㎝는 족히 쌓인 눈을 짊어진 승용차들이 기어가다시피했다. 용변을 참다못한 일부 승객들은 인근 휴게소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버스에 올랐으나, 그사이 앞질러 가버린 버스를 놓치고 허탈해하는 승객들도 눈에 띄었다. 박씨는 결국 출발 16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5시가 돼서야 고향집에 파김치 상태로 도착할 수 있었다. 부모는 뜬눈으로 아들을 맞았다.

또다른 버스 이용객 이모(24)씨도 24일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까지 가는데 무려 8시간30분이나 걸렸다. 이씨는 “강남터미널에서 차를 탄 게 오후3시인데 밤 10시에야 겨우 안성휴게소에 도착했다”며 “차라리 천안까지 전철을 타고 왔더라면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귀성 포기족 속출

움직이지 않는 차를 돌려 귀성을 포기한 사람들도 속출했다. 양모(40)씨는 24일 오후 3시께 부인, 돌을 갓 지난 딸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경기 남양주의 집을 출발했다. 연휴 동안 충남 홍성의 부모 댁과 당진의 처가에 들를 계획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눈이 온다는 교통방송을 듣고 양씨는 국도를 택했지만, 평소 1시간 남짓 걸리는 화성까지 4시간 넘게 걸렸다.

“앞으로도 눈은 더 내리고 국도 주변에서 차량 접촉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라디오방송을 접한 양씨는 귀성에 자신이 없어졌다. 10여분의 고민끝에 양가에 “이번 주말에 내려가겠다”고 전화한뒤 방향을 돌렸다. 네 가족은 밤 10시가 돼서야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예 귀성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회사원 강모(35)씨는 “연휴가 짧아 어느 정도 정체를 예상했는데 뉴스를 보니 교통 상황이 훨씬 심각해 고향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귀성객은 한국도로공사 등 당국의 미숙한 도로 관리를 질타하기도 했다. 정모(52)씨는 “25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오는데 안성 부근의 반대편 차선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제설 작업을 하는 걸 목격했다”며 “국도도 아닌 고속도로에서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어놓고 눈을 치운다는게 말이나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시댁에 내려가다가 빙판길 사고 때문에 운전대를 돌린 김모(29)씨는 “대설주의보와 맹추위가 일찌감치 예보됐는데 도로공사는 왜 차도가 꽁꽁 얼 때까지 손을 놓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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