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법관 정기인사에 맞춰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오세빈(57) 서울고등법원장이 35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며 느낀 소회를 편지에 담았다.
오 원장은 최근 서울고법의 후배 판사 및 직원들에게 '판사, 그 시작과 끝'이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띄웠다. 그는 이 편지에서 1975년 광주지법에 판사로 처음 부임한 이후 부장판사와 고법 부장, 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차례로 소개했다.
오 원장은 초임 판사 시절을 돌이켜 보며 "장발(長髮)로 잡혀온 피의자에게는 과료를 선고하고 사정이 딱한 형사범의 영장을 기각하는 바람에 사사건건 지적을 받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절친한 친구의 동생이 집시법 위반으로 내 법정에 섰을 때는 마음속 깊이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엄혹했던 '유신 시절' 젊은 평판사가 느꼈던 참담한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와 함께 오 원장은 제5공화국 당시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를 회고하면서 "학생들의 노랫소리를 들어가며 재판했지만, 후배인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려고 노력했고 실제 판결도 소신과 결단에 따라 했다"고 자부했다. 당시 모 여대 총학생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해 여성지 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또 "고법 부장판사로서 부패사건을 전담하면서 선거사범 재판을 맡았던 때는 높은 형량만큼이나 무거운 원성을 들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오 원장은 "저는 줄곧 법정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였고, 법원장으로 지낸 4년은 어쩌면 제게 어울리지 않는 생활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며 스스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법관이었는지를 반성한다"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사시 15회 출신인 오 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대전지법원장, 서울동부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등을 지냈으며 독일 유학 시절 경쟁법을 전공하는 등 기업법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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