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설이다. 경제위기로 귀성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있으나 고향을 찾는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명절에 찾아 뵐 부모와 형제가 있고, 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즐거움이다. '메밀꽃이 하이얗게 피는 촌, 조밥과 수수엿이 맛있는 고을, 나뭇짐에 함박꽃을 꺾어오던 총각들'(노천명의 <망향> 중에서)의 땅.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이들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새터민들이다. 망향>
온정주의ㆍ경계심ㆍ무관심 혼재
새터민. 북한을 이탈하여 남한사회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2005년부터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전에는 북한 귀순자, 북한 이탈주민, 탈북자 등으로 불렸지만 남한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았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붙여졌다. 2006년 입국한 새터민 수는 약 2,000명, 2007년 2,500명, 2008년 3,000명,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새터민들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그들을 직접 만나거나 보았다고 생각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 누적 수가 아직 많지 않아서일 수 있으나 생김새가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들과 달리 우리와 같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은 또 하나의 우리다. 길에서 마주쳐도 우리는 그들을 인지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함께 숨쉬며, 함께 걷고, 함께 산다.
우리가 새터민에 대해 갖는 감정과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실향민은 이들에게 동향인으로서의 친근감을 느낄지 모른다. 또 다른 이들은 넘을 수 없는 철조망 속 북한을 쳐다보는 호기심으로 이들을 바라볼지 모른다. 6ㆍ25를 체험하고 반복되던 간첩사건을 기억하는 세대는 경계심과 의심을 가질지 모른다. 대다수는 가난하고 억눌린 땅에서 온 불쌍한 사람들,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에 반영되고 이들 삶에 전달된다.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려는 지나친 온정주의는 이들의 자립을 방해한다. 어떤 대학 출석부에 명기된 '귀순동포'라는 네 글자는 배경을 숨기고 싶은 새터민 학생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노골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경계심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위축시키고 주변화시킨다.
2007년 한 방송사가 내보낸 서울의 새터민 밀집구(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터민의 48%가 같은 민족으로서 동포애를 느낀다고 응답한 반면 남한주민의 23%만이 그렇게 여긴다고 응답했다. 남한주민의 43%, 새터민의 62%는 새터민의 입국에 대해 남한사회가 환영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응답하였다. 새터민 정착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 남한주민의 78%가 부정적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자란 나는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것이 꼭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한국, 불안정이 두려워 통일 노력을 꺼린다"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이 부끄럽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새터민에 대한 동포애가 없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따뜻한 새 고향이 되어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타향 집을 기웃대는 불쌍한 이방인이 되고 만다.
새터민. 이들은 통일이 되면 결국 통합될 '또 하나의 우리' 중 먼저 들어온 사람들일 뿐이다. 작년보다 금년에, 그리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이들이 남한에 터를 잡을 것이다. 이들이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관심과 배려가 진정한 동포애
새터민과의 관계에서 절실한 것은 진정한 동포애다. 동포애에서 나오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넘어 이들을 마음으로 수용하고 남한이 이들의 제2의 고향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들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새터민과 나이 드신 실향민들이 꿈에도 그리는 진정한 고향에 돌아가는 꿈도 함께 꿀 수 있지 않을까?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 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는 노천명씨의 가지 못할 고향을 언젠가는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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