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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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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난 전화

입력
2009.01.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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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5일, 독일 루프트한자 이스라엘 지사로 아랍어 억양을 쓰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승객 300여명을 태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비행 중인 보잉 747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내용이었다. 루프트한자는 장난 전화로 여기고 비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발끈했다. 즉각 전투기 2대를 출동시켜 항공기를 터키 남쪽 키프로스의 라르나카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수색 결과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허가 없이 항공기를 키프로스의 비행 통제 구역으로 유도한 것을 놓고 양국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

▦항공기 폭탄 테러 장난 전화는 막대한 경제ㆍ사회적 피해를 유발한다. 항공사들은 폭탄 테러 전화가 걸려오면 일단 장난 전화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테러 대상으로 지목된 항공기를 일일이 수색ㆍ점검한다. 첨단 보안 시스템의 가동으로 항공기에 폭탄을 설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최근 장난 전화를 건 중학생 2명과 부모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내기로 한 것도 장난 전화에 따른 항공기 이ㆍ착륙 지연, 회항 등으로 인한 피해가 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항공사의 소송 예고에도 불구하고 27일 또다시 항공기 폭탄 테러 전화가 접수돼 큰 소동이 벌어졌다. 장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어떤 것일까. 장난 전화를 한 10대들은 "심심해서""재미삼아" 걸었다고 하지만, 성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불행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진술을 한다. 전문가들은 장난 전화가 익명성이 보장되고 죄의식도 덜 느끼게 하기 때문에 개인적 불만이나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분석한다. 또 평소 억눌려 있던 불안감과 강박증이 장난 전화를 통해 해소되면서 상습화의 길을 가게 된다고 진단한다.

▦항공기 테러 장난 전화는 범죄다. 장난 전화로 항공기 운항을 방해한 경우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항공사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모방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거나 가게 문을 닫는 이들이 늘어나고, 정부와 사회 기업에 대한 불만까지 점증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최악의 불황기, 장난 전화 한 통으로 항공기가 비상 착륙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까. 참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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