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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법보다 감정

입력
2009.01.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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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엄청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한꺼번에 여섯이나 죽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용산 재개발구역 참사사건은 이렇게 '국민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 감정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실이나 주장도 하찮고 구차하며, 무력하다. 경찰의 시위 진압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고, 정당한 공권력 집행은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의 무리한 욕심으로 왜곡된다. '좀더 치밀하고, 신중했더라면' 이라는 가정 앞에서 경찰은 영락없는 죄인이 된다.

경찰 용납 않는 '용산참사 여론'

농성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순수 세입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많은 시너를 준비하고, 화염병을 던지고, 큰 고무 소총으로 골프 공을 쏘아대는 불법행위도 이해를 해 준다. 생활의 터전을 지키려다 희생 당한 사람들이라는 감정 앞에서 법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유난히 우리사회는 법보다 감정이 강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법 그 자체에 있다. 과거 독재정권을 유지해 주던 법의 폭력성과 비합리성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거부와 저항, 불복종이야말로 곧 '정의'였고, 국민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오랜 투쟁을 거쳐 마침내 1987년 민주화운동에서 승리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졌고, 시민의식에 변화가 왔고, 사회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무조건 법과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감정을 중시한다. 진보세력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그 둘 사이에서 이성적 합의를 모색하기보다는 국민 감정을 이용해 법과 제도를 비웃고 무너뜨리려 한다. 그것이 개혁이라고 부르짖는다.

당연히 감정보다 법은 호소력이 약하다. 법은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한 이성적 최소일 뿐이다. 그래서 냉정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감정은 어떤 가치라도 자유로이 담을 수 있는 최대이다. 그래서 이상적이고 진보적이다. 때문에 훨씬 매력적이다. 노무현 정권에 법은 개혁의 걸림돌이었고, 기득권의 보호장치일 뿐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마음까지 배반하는 존재로 선전했다. "그 놈의 헌법 때문에"라는 말로 법을 적으로 몰아 붙였다.

법을 부정적 권위와 동일시한 결과, 민주사회의 근본인 법치조차 국민 감정과의 극단적 갈등의 대상인 이데올로기가 됐다. 포퓰리즘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내가 곧 법"이라고 외치는 세상이 됐다. 누구보다 법의 가치를 존중해야 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그 외침에 말려드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국회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찰을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여당 일부 의원들은 책임자부터 빨리 문책하자고,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력한 법질서 유지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찰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비겁하고 이기적인 태도다. 그들은 책임이 없는가. 경찰의 과잉 대응이 어디 처음인가. 도시재개발 철거민의 시위와 그에 따른 희생 역시 한 두 번이 아니다. 제3자가 개입해 그 시위를 더욱 폭력적으로 만든 것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뒤늦게 허둥대지 말고 진작에 도시정비사업법 등 관련법들을 만들거나 고쳤어야 했다. 그 동안의 직무유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포퓰리즘 편승 정치 지양해야

피해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현장에 잽싸게 달려가 보고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 감정에 눈치를 보는 그런 포퓰리즘 정치보다는 국민 감정과 사회적 정의를 잘 조화시키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그들에게는 훨씬 중요하다. 그러라고 뽑아주지 않았는가. 그렇게 해야만이 누구나 법의 가치를 존중하고, 더 이상 국민 감정이 법을 무너뜨리는 방종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법적 질서가 결여되면 독재도 나오지만, 무정부 상태도 팽배해진다. 이 양쪽은 모두 방종하고 전제적이다. 독재주의는 사실상 방종한 통치자의 무정부 상태이고, 무정부 상태는 방종한 무리들의 독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월터 리프만의 말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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