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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공손한 손' 오늘 더욱 그리운… 고향·가족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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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공손한 손' 오늘 더욱 그리운… 고향·가족의 추억

입력
2009.01.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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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지음/창비 발행ㆍ132쪽ㆍ7,000원

'눈이 온다// 눈이 오는 산등성이에 황소가 묶여 있다// 황소는 묶여있고 눈이 온다// 황소의 큰 눈을 닮은 눈이 황소의 새끼를 친다// 눈은 그렁그렁 황소를 닮았다// 울음소리를 따라 황소를 닮은 함박눈이 온다' ('눈과 황소'에서)

고영민(41ㆍ사진)씨의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 의 질료를 이루는 것들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추억이다. 그는 열네 살에 고향 충남 서산을 떠나, 지금은 근 두 배의 시간 만큼 도시에서 살았다. 그러나 대가족 중심의 농촌공동체 체험(그는 12남매의 막내다)은 그의 시적 광맥이다. '오늘도 나는 삼밭처럼 외롭다'('다알리아'에서), 혹은 '나는 국광처럼, 홍옥처럼, 아오리, 부사처럼 얼굴이 자꾸만 빨개졌다'('과수원'에서)와 같은 비유들은 그 광맥에서 뻗어나온 줄기들이다.

그의 시는 전원시, 혹은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회고하는 영탄에 그치지 않는다. 농촌ㆍ대가족 체험에서 길어올린 통찰이 현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을 지피려 아궁이 앞에 앉으니/ 구들 깊은 곳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야옹지다// 오늘밤, 이 늙은 누대(累代)의 집은 구들 속/ 새끼를 밴 채 진통이 심하겠다/ 불 지피지 마라/ 불 지피지 마라'('아랫목'에서)처럼, 수태한 어미고양이를 위해 냉방에서의 잠을 마다하지 않는, 축생(畜生)에까지 미치는 따뜻한 인간성의 회복과 같은 것이다. 또 농촌에서 각별한 혈연적 유대의 영속성은 세대를 뛰어넘는 가치가 된다. 여섯살 난 딸아이의 목에 가시가 걸려 당황하는 대목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당신의 입속'에서).

환갑을 지난 형님이 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해 바바리맨 인형을 사들고 내려가 추석 전날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 고향집의 정경을 소묘한 '효자'나, 시골집에서 올라온 찰옥수수 상자에서 사랑의 가치를 환기하는 '푸른 고치' 같은 시 역시 고씨의 시세계를 '고향의 시학'이라고 명명해줄 만한 일품들이다. 고씨는 "사춘기 시절 서울로 올라오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경험이 강렬했다. 이제는 어린시절 농촌에서의 선명한 기억들이 현재 겪는 어려움에 대한 위안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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